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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권영민의 문학콘서트>를 옛 전통의 화성 한복판에서 수원예총 회원 여러분과 함께 열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주선해주신 김훈동 회장님과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야기 손님으로 초청에 응해주신 신달자 선생님, 특별 공연을 위해 여기 오신 젊은 소리꾼 이나래 씨 고맙습니다.

 

 

이제 봄의 자취가 물러나고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는데 신달자 선생님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 꽃술로 얽히리니 /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라는 구절입니다. 저는 그래도 이렇게 사랑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 선생님의 시를 사랑합니다.

오늘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에서 ‘시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약간은 고전적인 주제를 내걸었습니다. 좀 낡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 시가 대중 독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한번 열린 자리에서 논의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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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문필가를 꿈꾸었는데,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시골 작은 마을에 서울대생이 생겼으니 우리 아버지는 아들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판검사가 되거나 적어도 군수 영감 쯤 되어 지프차를 타고 먼지 날리면서 고향에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꿈꾸시던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아버지의 실망이 대단하셨지요.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아들이 하고 있는 문학공부를 늘 궁금해 하셨습니다. 가끔 고향에 내려온 아들을 앞에 앉히시고는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언제 무엇에 써먹는 거냐고 묻곤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십년 동안의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대학의 강단에 서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래 겨우 대학 선생질 하려고 그렇게 공부에 매달려 있었느냐고 불만을 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공부라면 고등고시에 몇 번은 합격했을 것이고 판검사가 되었어도 서너 번은 더 되었을 거라면서 ‘무엇’이 되지 못한 제 공부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내가 문학박사 학위를 받던 날 아버지는 우리 고향마을 노인네들을 버스 전세 내어 모두 모시고 대학 졸업식장으로 출동하셨습니다. 대통령도 나오신다는 졸업식장에서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가 된 뒤에도 내가 여전히 대학의 연구실 구석에 박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이제 박사가 되었으니 무엇을 해야 할게 아니냐고 재촉하시는 겁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판검사는 물론이고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우습게 아는 그런 근사한 자리에 나가게 될 것으로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이 답답했기 때문에 무어하려고 박사학위를 땄는지 모르겠다면서 혼자서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끝내 아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박사라는 것에 실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지만 가난한 아버지께 작은 위안도 드리지 못하는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아버지께는 늘 죄송할 뿐입니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시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제목을 내걸고 시작한 오늘 문학 콘서트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벌써 결론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공부해온 과정으로 본다면 문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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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야기를 좀 바꾸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고 좋아하는 시인이자 민족운동가였던 한용운의 이야기입니다. 한용운은 일본 식민지 시대 불교지도자로서 3.1운동에 참가하였고, 유명한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켰습니다. 1936년 한용운이 성북동의 자택 심우장(尋牛莊)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용운은 그 무렵 소설에 몰두하면서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흑풍(黑風)」의 연재를 끝냈고, 잇달아 「후회(後悔)」라는 소설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대중독자에게 인기가 있던 잡지《삼천리》의 한 기자가 한용운을 찾아갔습니다. 잡지의 기획 연재물 ‘당대 처사(處士) 방문기’를 담당하고 있던 기자는, 불승의 몸으로 시와 소설 등 문예(文藝)에도 널리 통하고 있는 한용운에게 예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른 봄날 수선화 화분을 가지런히 놓고 고서를 쌓아놓은 가운데에서 참선을 하고 있던 한용운은 기자가 ‘부처님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스님이신데 인간의 언어로 희롱하는 문학에 관심을 두시는 이유가 궁금하다면서 문학이란 무엇이며, 문학이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한용운은 차분한 음성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술이란 인생의 한 사치품이지요. 오락이라고밖에 안 보지요. 요사이에 와서는 예술을 이지(理智) 방면으로 끌어가며 그렇게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정을 토대로 한 예술이 이지에 사로잡히는 날이면 그것은 벌써 예술성을 잃었다고 하겠지요. 그리고 또 근자에 이르러 너무나 감정이 극단으로 흐르는 예술은 오히려 우리 인간 전체에 비겁과 유약(柔弱)을 가져오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우려까지 하지요. 예를 들면,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기름이나 고추나 깨는 없어도 생활할 수 있어도 쌀과 불과 나무가 없으면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예술이 없어도 최저한의 인간생활은 이룰 수가 있지요. 그러나 좀더 맛있게 먹자면 고추와 깨와 기름이 필요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어떤 사람은 항의하리다마는 나는 이렇게 예술을 보니까요.”

  이 말을 듣고 기자는 자리를 떴지만, 머릿속에 오랫동안 법의(法衣)를 입은 노승이 합수정좌(合手正坐)하고 수도 참선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고 적어놓고 있습니다. 이 짤막한 말을 통해 한용운이 생각했던 예술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려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을 ‘인생의 사치품’이라고 말한 한용운의 깊은 뜻을, 촌보도 그 분을 따르지 못하는 범속한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인간의 생활 가운데에서 ‘쌀과 나무’는 먹고 사는 문제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간 생존의 문제는 문학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용운은 문학과 예술이 좀더 맛있게 먹자면 필요한 ‘기름이나 고추나 깨’와 같다고 했는데, 나는 여기에 예술의 참뜻이 담겨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좀더 맛있게 먹고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가치의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겠지요. 문학은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문학은 보다 더 의미있고 참되고 멋지고 맛나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삶이 밋밋할 때 소금을 치고, 덤덤할 때 고춧가루를 좀 뿌려야 제격입니다. 살아가는 맛이 돌도록 꿀도 바르고, 고소하게 깨소금도 넣는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의 양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한용운의 이야기를 일찍 찾아내지 못해서 아버지께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문학이라는 것이 더 멋지게 더 맛있게 더 의미있게 더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삶의 양념이라는 것을 말씀드렸다면 아버지께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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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집을 늘 곁에 두고 읽습니다. 그리고 우리집 애들에게도 자주 시를 읽도록 권하지요. 어떤 때는 아내에게도 내가 가려뽑은 시를 낭송해 보라고 합니다. 외국에 출장을 갈 때도 새로나온 한두 권의 시집을 꼭 여행 가방에 넣고 갑니다. 대학의 강단에서도 학생들에게 시 읽기를 자주 권합니다.

  내가 시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시가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으로부터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인간의 심성 그 자체를 내용과 형식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유일한 예술 형태입니다. 시는 마음을 말한 것(詩言志)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여기서 비롯됩니다. 시는 가장 잘 정제된 말로 이루어집니다. 말을 가다듬는 일은 심성을 가다듬는 일과 서로 통합니다. 어느 시대이건 문화의 창조력은 언어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언어의 꽃이 바로 시입니다. 거칠어진 말을 다듬으면서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시에 있습니다.

  우리는 옛적부터 시를 사랑하여 왔습니다. 시를 짓고 그것을 노래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에서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촌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시를 통해 삶의 도리를 배우고 자신들의 꿈을 드러내었습니다. 옛날 과거 제도와 같은 관리의 등용 시험에도 시를 짓는 문제가 항상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문벌이 있는 가문에서는 조상이 남긴 시문을 모아 문집을 만드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시와 더불어 삶을 살아가면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삶을 끌어 올리고자 했던 옛 선인들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삶은 각박하고 현실은 매우 거칠고, 거기다가 우리의 정서는 메말라 버렸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꾸려가기에도 바쁜 사람들이 시를 운위한다는 것 자체가 한가로운 일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는 오로지 시인들만의 몫이고, 일상의 인간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시를 음미하고 그 깊은 정서의 세계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낭만이 생활의 어느 구석에도 자리하기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사람들은 흔히 시의 위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시의 위기를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정서적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나는 잃어버린 시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한가운데에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적 심성의 회복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시급하게 이루어야 할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 속에 저절로 시가 스며들 수는 없습니다. 시를 열심히 읽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시를 읽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만만히 볼 수 있는 일도 아니지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시가 답답하고 재미없는 읽을거리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시라는 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처음부터 담을 쌓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시는 자꾸 읽어야만 가까워집니다. 처음부터 무엇을 알아내려고 고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꾸 읽어나가다 보면 시의 구절을 저절로 욀 수 있게 되고, 욀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저절로 그 뜻이 마음속에서 살아납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낼 일도 아니지요. 한 달에 한 권 정도의 시집을 사서 읽는다면 충분합니다. 시집 한 권의 값은 책값 중에서 가장 저렴합니다. 커피 한잔 값이면 누구나 한 시대의 가장 빛나는 언어로 이루어진 시집을 한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 서점에 들러 시집을 한권씩 사서 읽는 것은 정말로 가장 값싸고도 고상한 취미를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시를 읽는 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책상 한구석에 시집을 밀쳐두고 잠깐 틈을 내어 한두 편씩 읽어도 되고, 핸드백이나 주머니에 시집을 넣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꺼내보아도 됩니다. 시를 읽는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자유롭습니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는 삶의 다양한 경험과 충동에 균형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는 그것을 애써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충만한 기쁨을 주며, 자기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존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초월의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께는 초대손님이신 신달자 선생님의 시집 <열애>를 선생님께서 자필 서명하여 선사하기로 했습니다. 참으로 멋진 선물인데 오래 곁에 두시고 읽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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