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정신적 지주로 영원히 남게 된 최인훈 선생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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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선생께서 세상을 뜨셨다.

한국문단의 큰 어른을 이제는 다시 뵈올 수 없게 되었다.

 

최인훈 선생은 1959년 단편소설 GREY 구락부 전말기(1959)로 등단했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전개가 모호하고 작품의 전편을 통하여 작가 특유의 관념이 짙게 배어나고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자신의 내부세계에서 사물과 사상을 의식적으로 조작한다. 그들은 행동이 없고 관조만 있는 자기응시의 인간들이다. 철저한 무위를 행동강령으로 삼고 있는 회색의 집단을 통해 작가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우울과 방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GREY 구락부 전말기는 관념소설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최인훈 문학의 원점에 해당한다. 이 작품에서 부조되고 있는 관념이 역사의식과 현실감각을 확보하면서 광장(1961), 구운몽(1962), 크리스마스 캐럴(1963), 회색인(1964), 총독의 소리(1967),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69) 등으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인훈 선생의 소설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이 그의 소설을 통해 다양한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최인훈 선생의 소설은 허구적 자아의 형상과 경험적 자아로서의 작가가 특이하게 대치함으로써 아이러니의 국면을 연출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적 아이러니가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암시하게 된다. 특히 그의 소설적 공간이 분단 상황이라는 정치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는 점은 이러한 특성을 암시해 주는 근거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는 분단 상황과 거기서 빚어진 정치 현실의 문제성을 특이한 알레고리와 패러디의 방식을 통해 소설적으로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 그의 정치적 상상력은 삶의 현실과 모든 국면이 정치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최인훈 선생은 민족 분단이라는 당대 현실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정치적인 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분단 상황에서 야기된 이데올로기의 편향성과 반공 반일 노선의 이율배반적 속성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하나의 새로운 알레고리를 창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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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작품이 광장(1961)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민족분단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철학도이다. 그가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감행하게 되는 가치 선택을 위한 지적 모험이 이 소설의 참주제와 연결된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공부하며 이상을 키워나가지만, 아버지가 북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임이 판명되면서 경찰의 혹독한 취조를 받게 된다.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게 관념적 상태에서만 의식하고 있던 남북의 분단과 이념적 갈등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대두되어 주인공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게 된다. 그는 남한 사회가 자유당 정권의 부조리와 사회적 부패로 혼란에 빠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누리는 행복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사회 풍조로 인하여 진정한 공동체의 삶을 이룰 수 없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냉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참다운 삶의 광장을 찾아 배편으로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북한에서도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명령과 그에 대한 복종만이 있을 뿐임을 알게 된다. 그가 그리던 진정한 삶의 광장은 북에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작품의 주인공은 남과 북을 놓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신이 꿈꾸었던 이념을 선택하고자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삶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사고로 인하여 주인공은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남과 북을 모두 버리고 제3국을 선택한다. 물론 이 같은 선택은 자기 주체에 의해 삶의 가치를 확립할 수없는 시대적인 강요로 이루어진 선택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가 꿈꾸는 진정한 삶의 광장이 소설 속에서 바다갈매기의 심상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북쪽의 사회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한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제삼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남과 북 어느 쪽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은 결말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함으로써 이념선택의 기로에서 개인의 정신적 지향의 한계를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구도를 통해 완강하게 고정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장편소설광장의 연장선상에서 대비적으로 그려낸 소설적 개성은 회색인(1964)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 소설은 광장과는 달리 행위와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의 구성보다는 주인공 내적 독백과 관념적 사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4·19혁명 직전의 한국사회이며,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기점으로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을 시간의 축으로 삼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북한에 두고 월남한 독고 준이라는 지식인 청년이다. 자기 존재의 의미와 그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독고 준은 남한 사회를 뒤덮고 있는 분단 상황의 고통과 편향된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서 현실의 삶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방황한다. 회색인의 주인공은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소극적이며 회의적이다. 특히 월남해서 살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와 같은 인물의 설정은 남과 북의 현실을 모두 거부한 채 제3국으로의 도피를 택했던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경우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때때로 떠오르는 북한 땅 고향에서의 유년시절을 뿌리치지 못한다. 월남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나이에도 주변으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되었던 그는 자신이 서 있는 남한의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뿌리 뽑힌 존재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독고 준이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태도는 자신의 운명적인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사색을 통해 어느 정도 방향성을 드러낸다. 행동과 실천보다 깊은 고뇌와 지적인 사색을 통해 문제의 궁극을 찾아가고자 하는 이런 태도는 작가 최인훈 선생이 창안해낸 하나의 관념적 인간형의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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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선생이 자신의 소설쓰기에서 관념소설로서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 발전시키면서 새롭게 발견한 형태가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1967)이다. 총독의 소리는 여러 편의 편의 작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작의 형식에서 중시하고 있는 연작성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서사의 기본요소가 되는 행위구조가 결여되어 있어서 일관된 흐름이나 발전을 보여주는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 형태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상적인 인물로서 총독의 존재만이 설정되어 있고, 그의 모습은 일련의 연설 형태가 되어 버린 담화의 내용 속에 감춰져 있을 뿐이다. 주동적인 인물이 벌이는 행위가 없으므로 사건도 없고, 사건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뒷받침해 주는 배경도 상정할 수 없다. 오직 담화의 상황 자체만이 작품 내적인 구조를 지탱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상황성의 반복만이 연작으로서의 성격을 규정해 주고 있다.

총독의 소리는 독특한 어조로 이어지는 담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담화는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있고, 담화의 내용을 이루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메시지의 내적 상황과 외부적인 국면을 설정하기 마련이다.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에서 각 작품 형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담화의 형식은 그 자체가 다분히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누구의 담화이며, 누구를 대상으로 하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독특한 담화 공간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담화의 형식은 화자와 청자 사이의 일련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그 용법과 의미가 규정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언어형식 자체가 가상된 현실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담화 공간으로서의 상황 설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화자의 존재는 담화의 목소리 속에 감춰져 있는 총독이다. 한국 내에 비밀조직인 조선총독부 지하부가 있고, 이 비밀단체가 비밀방송을 통해 총독의 담화 내용을 내보내는 것으로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조선총독부 지하부라는 조직의 존재를 내세운 것 자체가 다분히 풍자적인 것이지만, 총독의 담화내용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현실 정치와 연관된 여러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의도적인 고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활용하고 있는 담호의 방식이 청자의 입장을 거의 무제한적인 불특정 다수의 청중으로 삼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작품의 성패가 바로 그 청중들의 반응에 의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허구적 장치는 작가 자신이 현실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정치적 이념과 태도를 위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사적 고안이다. 우선 작품 내적인 상황 설정에서 중시되는 조선총독부 지하부와 총독의 존재 설정에서부터 그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한국 근대사의 왜곡된 전개를 획책한 제국주의의 부정적인 표상이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그 책임자인 총독도 마찬가지 존재였음은 물론이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존재를 한일관계가 타결된 1960년대 후반 한국의 정치 현실 속에 가상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허구적인 장치를 통해 현실정치의 모순을 폭로하고 희화화하고 있으며, 현실의 문제성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1960년대 후반의 한국 정치 상황을 뒤집어보고 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귀축 영미(鬼畜英美)’로 대변되고 있는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 ‘러시아로 지칭되고 있는 국제공산주의의 야욕,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존재를 다시 재현시킨 일본의 성장 등을 국제적인 역학관계로 설정한다. 이 가운데에서 논의의 중심에는 물론 분단 한국의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작품 내적인 구조로 볼 때, 총독의 소리는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 총독의 담화로 꾸며져 있으므로, 표면적인 일본의 입장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채워진다. 물론 이러한 상황 설정 자체가 하나의 역설이지만, 한일회담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의 확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설득력 있는 고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입장이라는 가정된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미국이나 소련에 대한 언급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작가 최인훈 선생은 이같은 당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해 신식민주의의 도래를 우려하고 있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추진하고 있는 근대화 운동이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적 인식 아래에서, 그는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의 확대를 비판하는 총독의 소리를 다시쓰고 있는 것이다. 총독의 소리는 결국 그 문학적 성과를 작가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형식적 요건이나 미학적인 요건이 모두 정치적 효과를 위한 고안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속성은 비역사적 추상화의 방법을 뜻하는 관념이라는 용어만으로는 규정하기 힘들다. 오히려 당대 현실 속에서 이 작품에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지향이 갖는 정치적인 효과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목해야 할 것은 총독의 소리가 빚어내는 새로운 정치 담론의 공간이 1960년대 후반기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이념의 광장으로 든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지니고 있는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태도가 엄숙주의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응할 만한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총독의 소리는 시대상황의 위기를 지적하는 다급한 목소리의 문학으로 기록되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이 신식민주의의 도래에 대응할 만한 단단한 이념의 틀을 제대로 정치적 상상력 안에서 구체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은 당대 정치의 이념적 고정성과 폐쇄성에서 기인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최인훈 선생이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서사장르 대신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1976),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8) 등의 극 양식을 새롭게 시험한 것은 관념의 늪에 빠져든 자신의 문학세계를 전환시켜 보고자 했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인훈 선생의 작가적 고뇌는 그 정치적 상상력의 폭과 깊이보다 더 아득하였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생은 떠나셨지만 한국문학의 정신적 지주로 최인훈 문학은 영원할 것이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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