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바람이 흥미롭다. 이 소설은 이미 국내에서 백만 부를 훨씬 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지난 해 영화화 되면서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여성과 세대 문제에 관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이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2018년 말이다. 그런데 지쿠마 서방[筑摩書房]에서 책이 나오자마자 중판이 거듭되었고 3개월 만에 9만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꾸준히 인기를 모으면서 지난 한 해 동안 15만부를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2019년도 일본 문예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이 기간 동안 일본에 번역 소개된 외국문학 작품 가운데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이 일본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향을 두고 일본 현지의 언론과 비평가들도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작가인 조남주 씨를 초청한 강연회가 도쿄에서 열려 상황을 이루었고 번역자인 사이토 마리코 씨가 방송에 출연하여 이 작품을 소개하는 등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현상이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잇달아 2019년도 문예 부문을 총결산하는 시리즈물 기사에서82년생 김지영의 등장을 단연 화제의 중심으로 내세웠고, 이 소설이 한국에서 불러일으켰던 페미니즘 논란에 주목하였다. 특히 한국의 독자들이 보여주었던 사회비판적 목소리와는 달리 일본의 여성 독자들은 소설 속의 여주인공 김지영에게 공감하면서 함께 울었다고 적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 일본에서 이루어진 한국 소설 가운데 화제가 되었던 경우는 최인호, 윤흥길, 조정래 씨 등의 작품이 있다. 그런데 2011년에 번역 출판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당해 연도에 4쇄를 넘기면서 그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출판사 쿠온(Cuon)이 기획 출판하고 있는 새로운 한국의 문학시리즈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하여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원더 보이(김연수), 아오이 가든(편혜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출판으로는 쇼분샤가 기획한 한국문학의 선물이라는 시리즈인데, 한강, 박민규, 황정은, 김금희, 천명관 등의 소설이 번역 출판되고 있다. 출판사 쇼시 칸칸보[書肆侃侃房]에서 기획한 한국 여성문학 시리즈는 김인숙의안녕 엘레나를 시작으로 정유정의7년의 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편혜영의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의 번역 출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출판 경향은 현재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나 TV 드라마의 인기 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소설의 당대적 경향을 곧바로 일본의 독자층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학을 곧바로 수용하여 한국의 독서 시장에 내놓던 현상이 그대로 역전되어 나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한국의 당대 문학의 경향을 일본 출판계가 그대로 공유하게 됨 셈이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문학은 근대문학의 초창기부터 일본문학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신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이인직도 일본 유학을 통해 소설의 대중적 성격과 신문 연재의 묘미를 터득했다. 이광수의 문학시대를 주도했던 청년 이광수가 무정(1917)을 발표했던 것은 와세다 대학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일본 근대문학의 풍경 속에서의 일이었다. 근대적 자유시의 형식을 탐구하였던 김억이나 주요한도 모두 일본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므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라는 거대한 권력 구조 안에서 한국 근대문학은 일본문학의 흐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식민지 시대의 비평가 임화가 주창했던 모방과 이식(移植)’의 문학이라는 명제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지금도 일본 유명 작가들의 소설은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잘 나가는 인기 품목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역량은 사실 한국의 독자들에 의해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평가받았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우리 작가들 가운데 하루키세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붙어 있다.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한국의 대중음악이나 TV드라마가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이른바 한류라는 특이한 문화 현상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한국문학에는 일본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가수 보아도 없고, 일본 여성들이 박수했던 배우 욘사마도 없다. 한국의 근대문학이 성립된 이후 한 세기를 넘어서는 동안 한국문학은 그 존재 의미를 일본의 독자들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의 유명 작가의 대표작들이 우수한 번역자들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지만 일본의 독자들은 한국문학이 제기하는 삶의 문제에 대한 깊이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일본 사회에 던지는 목소리가 앞으로 얼마나 크게 번지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15만 이상의 독자가 이 소설이 던지는 사회문화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이 작가가 제기하는 인간의 삶과 그 존재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에도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랜 동안 일본 문학에 빚져온 역사적 정신적 부채를 벗어나고 있는 이 소설이 일본 출판 시장에서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