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다(Leda)와 백조

  

 

폼페이에서 발견한 벽화

이태리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는 화산재 아래 묻혀 있던 곳이다. 2천년 전인 서기 79폼페이에서  23 km 떨어진 베수비오 산(Mount Vesuvius) 대폭발을 일으켰다. 베수비오 산은 오랜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이 사화산처럼 서 있던 산이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폼어나왔다. 그리고 그 화산재가 그대로 인근의 도시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는  7m 달하는 화산재에 덮인 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16세기 말에 그 존재가 발견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발굴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 폼베이에서 고대 로마 시대의 관능적인 벽화가 발견돼 고고학계가 탄성을 터뜨렸다폼페이 유적 지구의 구조 보강 작업 도중 백조의 형상을 한 주피터 신이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임신시키는 장면을 생생히 묘사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지의 한 저택의 침실 벽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약 2천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감과 레다 여왕의 관능적인 표정이 살아있어 발견자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조로 변신한 주피터 신이 레다를 임신시킨 이야기는 당시 폼페이에서 주택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희랍 신화 속의 레다와 백조

 

희랍의 신화 가운데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Leda)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레다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 디오스쿠리(Dioscuri)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왕비 레다를 약칭하여 디오스(Dios)’라고 한다. 디오스의 여신이라고도 부른다. 레다는 원래 스파르타 왕 틴다리오스(Tyndareos)의 왕비이며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에우로타스(Eurotas) 강에 나아가 자주 목욕을 한다. 올림포스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던 제우스가 이 아름다운 미녀의 자태를 보고 마음을 태운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함부로 하기는 어렵다. 제우스는 때를 기다린다. 마침 레다가 작은 연못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본 제우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술수를 부린다. 레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곁으로 갑자기 하늘에서 백조 한마리가 날아든다. 그리고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백조를 잡아먹기 위해 주위를 맴돈다. 백조는 독수리를 피하기 위해 허둥댄다. 레다는 백조를 가엾게 여겨 자기 품에 꼭 안아 숨긴다. 레다가 백조를 품은 사이 백조는 강폭한 사내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레다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백조는 제우스의 변신이고, 독수리로 가장한 것은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다. 아들 헤르메스가 아버지의 욕심을 돕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제우스와 일을 치른 그날 밤, 레다는 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와 잠자리를 갖은 후에 임신한다. 얼마 뒤에 그녀는 사람 대신 알을 두 개 낳는다. 그 두 개의 알에서 각각 남녀 1명씩 2쌍의 쌍둥이가 태어난다. 한쪽은 제우스의 자식이요, 다른 한쪽은 인간 틴다리오스의 자식이다. 제우스의 알에서 태어난 자식은 헬레네와 오빠인 폴룩스(폴리데우케스). 틴다레오스의 알에서 태어난 자식은 클리템네스트라와 오빠 카스토르이다. 이 가운데 남자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디오스쿠리즉 제우스의 아들들이라고 부른다.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 신를 끌어안고 있는 왕비 레다의 모습은 수많은 미술품으로 만들어져 전해온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레다와 백조>는 그 가운데에서도 유명한데, 이번에 발견된 벽화와 그 모티프가 아주 유사하다.

 

시인 예이츠의 <레다와 백조>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illiam B. Yeats)는 그의 시 <레다와 백조 Leda and the swan>에서 제우스 신과 왕비 레다의 관계를 말해주는 그리스 신화를 시적으로 변용하여 이렇게 그려낸다.

 

갑자기 덤벼들어; 백조는 큰 두 날개를 조용히 치며

비틀거리는 여인 위에 덮친다, 여인의 허벅다리는

새의 어둔 깃가지에 쓰다듬기고, 목은 주둥이에 잡혀,

어찌할 수 없이 여인의 가슴은 백조의 가슴에 껴안긴다.

 

공포에 사로잡혀 얼빠진 손가락이 어떻게 맥 풀린 허벅다리에서

깃에 싸인 그 영광을 밀어젖힐 수 있겠는가.

백색의 급습(急襲)에 내맡긴 육체가 그 품안에서

이상히 가슴 울렁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후략)

 

A sudden blow: the great wings beating still

Above the staggering girl, her thighs caressed

By the dark webs, her nape caught in his bill,

He holds her helpless breast upon his breast.

 

How can those terrified vague fingers push

The feathered glory from her loosening thighs?

And how can body, laid in that white rush,

But feel the strange heart beating where it lies?

 

이 시를 소개하고 있는 한 영문학자(이창배, 20세기 영미시의 이해, 24-26)의 해설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레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레다를 범한다. 이것은 신이 인간의 세계로 하강하여 인간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신인교섭(神人交涉)’의 모티프로 고정되어 이야기 속에 전해지게 된다. 예이츠는 이 신화의 한 장면을 그의 시 속에 끌어들여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그리스의 문명이라는 것이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신과 왕비 레다의 교섭의 장면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 신과 인간의 육체적 교섭은 그리스도의 수태고지(受胎告知)와 맞먹는 중대한 역사적 순간이다. 예이츠가 이 극적인 장면을 시적 상상력으로 포착하여 인간의 문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담아낸 셈이다.

 

이상의 소설 동해(童骸)속의 디오스의 여신

 

리 문학 가운데에는 이상(李箱)의 소설 동해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디오스의 여신인 레다의 이야기가 패러디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 장면은 눈이 밝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찾아내기 어렵다. 소설 동해의 이야기는 요즘의 풍속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남녀관계를 그려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라는 인물은 작가 이상 자신으로 위장하면서 일종의 메타픽션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어느 날 오후 혼자 살고 있는 단한칸 방으로 이라는 여인이 가방을 싸들고 찾아온다. ‘는 이 여인의 남편인 이라는 사내와 서로 알고 지내는 친구이다. ‘이 남편과 사소한 다툼 끝에 집을 뛰쳐나와서는 남편 친구인 를 찾아온 것이다. ‘과는 못 살겠다면서 에게 한번 같이 살아보잔다. 이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을 내치지 못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이튿날 그녀를 데리고 에게 찾아간다. ‘을 나무라면서 그 아내인 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에 과의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벌어진다. 이때 이 자신을 디오스의 여신이라면서 두 사내의 언쟁 사이에 끼어든다.

지이가 디오스의 여신(女神)입니다. 둘이 어디 모가질 한번 바꿔 붙여 보시지요. 안 되지요? 그러니 그만들 두시란 말입니다. 윤한테 내어준 육체는 거기 해당한 정조(貞操)가 법률처럼 붙어 갔던 거구요, 또 지이가 어저께 결혼했다구 여기두 여기 해당한 정조가 따라왔으니까 뽐낼 것두 없능거구, 질투헐 것두 없능거구, 그러지 말구 겉은 선수끼리 악수나 허시지요, ?”

윤과 나는 악수하지 않았다. 악수 이상의 통봉(痛棒)이 윤은 몰라도 적어도 내 위에는 내려앉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여기 앉았다가 밴댕이처럼 납작해질 징조가 아닌가.

 

여기서 이 언급하고 있는 디오스의 여신은 물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말한다. 동해의 여주인공 은 하룻밤 사이에 남편 를 번갈아가며 관계한 셈이다. 그녀는 신화 속의 디오스 여신, 즉 스파르타 왕비 레다가 백조로 변신했던 제우스와 관계를 맺고 다시 그날 밤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와 관계했던 사실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꾸어 패러디한다. ‘은 자신을 디오스의 여신이라고 자칭하면서 의 언쟁을 말린다. 이 대목이야말로 동해의 텍스트에서 여주인공의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은 자신의 얼굴에 디오스의 여신을 덧씌우고는 두 사내 사이를 오가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조를 내세워 이들을 납득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디오스의 여신이라면 도대체 누가 제우스이고 누가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일 수 있겠는가?

소설 동해는 여주인공 의 일탈을 통해 여성에게 요구해온 정조(貞操)의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것은 도덕이라든지 윤리적 가치라든지 하는 것이 모두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위한 고도의 수사적 장치를 읽어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소설의 제목 자체도 처녀와 헌 게집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동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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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주요 사항>

 

9.26 문예전문지 [태서문예신보] 창간 (주간 장두철, 1919.2.17. 16호로 종간)

7. 18 신문관에서 이광수의 <무정> 초판 발간.

 

<소설>

 

이하몽  무궁화   매일신보 18.1.25~7.27

나정월  정순   여자계 1 18.2

나정월  경희   여자계 2 18.3

이광수  방황   청춘 12 18.3

이광수  윤광호   청춘 13 18.4

유종석  모자의 정   청춘 13 18.4

최찬식  능라도   조선시론 18.7.5

나정월  회생한 손녀에게   여자계 3 18.9

국여  !   유심1~2 18.9~10

이상춘  백운   청춘 15 18.9

이석정  유감   매일신보 18.11.11

 

<소설집>

 

가인기우   보급서관 18.9.25

을밀대   보급서관 18.2.15

일대장관   회동서관 18.1.7

해당화   광학서포 18.4.25

화용월태   보급서관 18.12.31

이광수 무정   신문관 18

이상협 무궁화()  신문관 18.12.5

이해조 홍장군전  오거서창 18.5.27

최찬식 삼강문  덕흥서림 18

 

<희곡>

 

천원 초춘의 비애   여자계 2-2 18.9

윤백남 국경   태서문예신보 18.12.25

 

 

평 론

 

현상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사적 가치를 논하여 조선당면의 풍기문제에 급함   청춘 12 18.3

이광수 현상 소설 고선(考選) 여언(餘言)   청춘 12 18.3

이광수 부활의 서광   청춘 12 18.3

현상윤 조선 청년과 각성의 제일보   학지광 15 18.3

현상윤 이광수군의 <우리의 이상>을 독하고   학지광 15 18.3

서상일 문단의 혁명아를 독하고   학지광 15 18.3

이병도 독서우감   학지광 15 18.3

최남선 풍기혁신론   청춘 14 18.6

이광수 숙명론적 인생관에서 자력론적 인생관에   학지광 17 18.8

한용운 조선청년과 수양   유심 1 18.9

이광수 자녀중심론   청춘 15 18.9

백대진 최근의 태서문단   태서문예신보 4   18.10

사설 예술가와 자각   태서문예신보 4 18.10

안서생 노서아의 유명ᄒᆞᆫ 시인과 십구세기의 대표뎍 작물   태서문예신보 4  18.10

백대진 생의 진실   태서문예신보 6 18.11

안서생 소로굽의 인생관   태서문예신보 9-14   18.11-19.1

안서생 프란스 시단   태서문예신보 10,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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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

 

 

산도화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이 해방 이후 출간한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은 서울 영웅출판사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발간했는데, 시집의 판형은 B6판이며 전체 126면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집의 첫머리에는 시인 박목월 자신이 쓴 해제가 머리말처럼 실려 있다. 본문의 말미에는 청록파의 조지훈(趙芝薰)과 박두진(朴斗鎭)이 쓴 발문이 붙어 있다. 오랜 문우였던 시인 황금찬(黃錦燦)도 이 시집에 발문이 썼다. 조지훈은 발문에서 일제 말기 <문장> 지의 추천을 받은 후 두 사람이 경주 부근 건천에서 처음 만나 문학적 동지로서 함께 해온 사연을 감동적으로 적어놓고 있다.

박목월은 해방 직후 자신의 고향인 경주를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화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으며, 1946년 결성된 한국청년문학가협회에 김동리 조지훈 등과 함께 참여했고 한국문인협회 출범에도 참여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한때 출판사 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고, 잡지 아동(1946)·동화(1947)·여학생(1949) 등을 편집, 간행하면서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다. 시집 산도화는 이와 같은 해방 이후 문단 활동의 정리작업에 해당한다.

시집 산도화에는 시인이 해방 전후에 쓴 총 35편의 시가 전체 6부로 나누어져 실려 있다. 1부에는 구강산(九江山) 1, 한석산(寒石山), 산도화 1. 2. 38, 2부에는 산색(山色),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6, 3부에는 모란여정(牡丹餘情), 여운(餘韻), 해으름6, 4부에는 구름밭에서, 산이 날 에워싸고6, 5부에는 임에게 15, 6부에는 월야(月夜)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일상적 언어를 통해 산, 바위, , 꽃 등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해내고 있으며, 절제된 감정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시적 이미지의 공간적 배치를 통한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민요풍에 가까운 자연스런 리듬을 함께 살려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2

 

조지훈이 쓴 이 시집의 발문에는 박목월과 조지훈이 처음 만나게 된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두 시인의 문학청년 시절의 풋풋한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아름답다.

 

내가 목월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른 봄이었다. 그 전에 나는 절간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었고 문장폐간호를 받았다. 그해 겨울 과음한 탓으로 빈사의 몸으로 서울에 와서 이른바 국민문학이 발간된 것을 보았고 몇 달 누워 있다가 이듬해 봄에 조선어학회의 큰사전편찬을 돕고 있을 때였다. 일본서 돌아오는 초면의 시인이 하나 화동에 있는 조선어학회를 찾아와서 오는 길에 목월을 만나고 왔다는 말을 전했었다. 그때까지 경주를 못 보았을 뿐 아니라 겸하여 목월도 만나고 싶고 해서 나는 그 이튿날 목월에게 편지를 썼다. 무슨 말을 썼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매우 긴 편지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뒤에 목월에게서 답장이 왔었다. 그 짧으면서도 면면한 정회가 서려 있는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주 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 속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이 짧은 글을 받고 나는 이내 전보를 쳤었다.                                                                                                                  (조지훈, 산도화 발문)

 

조지훈이 목월을 찾아 경주로 내려오던 날 아침부터 하늘에서는 봄비가 분분하게 흩뿌렸다. 목월은 지훈을 만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일찌감치 건천역으로 나가 지훈을 기다렸다.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융조합 서기로 일하고 있던 그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시를 쓴댔자 그것을 발표할 길이 없었다. 모든 잡지와 신문이 폐간 당한 터라서 그는 중앙문단에서 제대로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채 시골 생활에 빠져 있었다. 그가 경주에서 가끔 만났던 문인은 당시 소설가로 이름이 나 있던 김동리였다. 고향으로 내려와 은거하고 있던 김동리는 갓 시인이 된 박목월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문우였다. 그런데 낯모르는 시인 조지훈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리고 경주로 내려와 그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목월은 조지훈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와의 만남을 소중한 추억으로 회상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경주에 있는 나에게 하루는 편지가 왔다. 봄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처럼 멋이 있으면서 단아한 지훈의 필체로 넉 장 정도의 긴 편지였다. 시인다운 우아한 사연의 그 편지를 6.25 사변 때 잃어버린 것이 내게는 두고두고 한이었다. 내가 회답을 보낸 얼마 후 그는 나를 찾아 경주로 왔다. 긴 머리가 밤물결처럼 출렁거리던 그의 첫 인상은 시인이기보다는 귀공자 같았다. 티 없이 희고 맑은 이마, 그 서글서글한 눈- 나는 서울에서 온 시우를 맞아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지훈을 애도하며)

 

그날 해질 무렵 건천역에 기차가 들어섰다. 박목월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지훈이 자신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전날 밤 한지에 박목월이라고 자기 이름을 써 두었다. 그리고 역으로 나가면서 그 종이를 챙겼다. 그는 역 앞에서 자기 이름을 쓴 한지를 깃대처럼 쳐들고는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시골 아낙네 서넛과 촌로 두엇이 플랫 홈에 내렸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지훈이 천천히 기차에서 내려섰다. 목월은 자신이 들고 서 있던 깃대를 흔들 필요도 없이 단박에 시인 조지훈을 알아챘다. 긴 머리를 날리면서 기차에서 내린 지훈은 저녁 무렵 설핏한 기운 속에서도 훤칠한 키에 수려한 면모가 돋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 안았다. 그렇게 이곳 건천역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암흑의 시대를 절망 속에서 살아가던 젊은 두 시인은 폐허의 고도 경주의 여사(旅舍)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문학 이야기로 시작하여 둘의 대화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갔다. 조지훈은 시인으로서의 존재를 이렇게 따뜻하게 지키고자 하는 목월이 고마웠다.

 

3

 

시집 산도화표제작인 산도화 1은 박목월의 초기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절약된 언어와 간결한 형식, 선명한 이미지의 공간적 배치 등은 박목월의 초기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주관적 감정의 표현을 배제하고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방법은 정지용 이후의 현대시의 경향과 맥락을 같이한다. 시인 자신은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적료의 풍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세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보랏빛의 석산(石山)과 대비되는 산도화의 색깔이라든지 옥 같은 물빛 등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산도화, 봄눈 녹아 흘러내리는 물, 계곡에 나타난 암사슴의 모습 등을 통해 자연 그 자체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도화 1

이 작품에서 시의 제재가 된 산도화는 한국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복숭아꽃이다. 일반에서는 개복숭아꽃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봄에 연분홍의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시적 진술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구강산이라는 산은 실제로 존재하는 산은 아니다. 시인 자신이 상상적으로 구상해 놓은 마음속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음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산도화사슴이다. 보라빛을 띠고 있는 구강산 기슭에 산복숭아꽃이 두어 송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사슴 한 마리가 봄눈 녹아내리는 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다. 이런 장면은 상상적으로 가능하다.

이 시의 진술은 서경(敍景)을 위주로 하고 있다. 섬세한 감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와 같은 경치를 실제로 찾아볼 수는 없다. 시적 화자는 일체의 주관적 감정을 절제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보랏빛의 산, 두어 송이 벌어진 산도화, 산골 개울가의 암사슴은 인간의 세계와는 떨어져 있는 아늑한 자연의 비경(秘境)이다. 디테일에 대한 과감한 생략은 간결한 언어 표현을 통해 확인된다. 시적 공간에 오롯하게 남겨진 것이 산과 산도화와 사슴뿐이니, 봄이 찾아온 자연의 풍경치고는 모든 사물이 너무 단순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이 단순성이 추상(抽象)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구강산은 하나의 신비로운 이상향처럼 시를 통해 살아난다.

어떤 이는 박목월의 초기 시들이 마치 민화(民畵) 속의 장면을 그려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짤막한 어구로 이어지는 시적 진술에서 석산(石山)의 보랏빛과 산도화의 색깔, 물빛 등은 선명한 색상의 대비를 이룬다. 1, 2연은 보랏빛 석산과 연분홍의 산복숭아꽃이 조화를 이룬다. 시적 대상 자체는 아늑함 속에서 정적(靜的)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3, 4연은 그 느낌이 약간 다르다. 눈이 녹아내리는 옥빛 개울물은 작지만 동적(動的)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리고 거기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암사슴의 모습이 포착된다. 시적 텍스트의 전반부 1, 2연이 보여주는 정적인 느낌과 3, 4연에서 확인되는 개울물의 작은 움직임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 셈이다.

박목월의 초기 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도화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시적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것은 아니지만 산도화의 풍경은 시인이 동경하고 있는 이상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산도화 2산도화 3을 함께 읽어보면 간결한 언어가 만들어내는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표현의 시적 성취를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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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 최고의 비평가 김윤식 교수

 

어느 시대의 문학에서도 최고의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김윤식 교수의 경우에 그렇다. 김윤식 교수 이전에는 김 교수와 같은 비평가가 우리 문단에 없었는데, 김 교수 이후에도 그와 같은 비평 작업을 감당할 만한 비평가가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독보적인 활동을 보여 온 김윤식 교수에게 우리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전혀 아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김윤식 교수가 평생을 두고 쌓아온 2백여 권에 이르는 엄청난 저술과 그 비평적 성과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김윤식 교수는 비평이란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자신의 비평 작업은 발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단한 비유적인 진술은 김 교수 비평의 성격을 말해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문단의 한복판에 발을 내디디고 든든하게 자신의 거점을 정한 뒤, 그 역사적 현장성을 파악하면서 작품을 논한다는 자부심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런 실증성과 시대성의 인식이야말로 김 교수가 남긴 모든 비평 작업에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방법론의 기반이기도 하다.

  비평이란 한 시대의 문학이 그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에 긴요하게 요구된다.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적 방법을 통해 이미 이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의 발로 쓰는 비평이란 논리적 형식보다는 실증적인 내용에 더욱 관심을 둔다. 사변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것에,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앞세운다. ‘발로 쓰는 비평은 문단의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비곡절을 안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을 그 대상이 되는 문학 작품과 나란히 내세우고자 한다. 이 특이한 작품과의 맞서기를 통해 그 문학을 만들어낸 수많은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작가와 더불어 삶과 문학을 생각하며 현실에 골몰한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이 강조된다.

  김윤식 교수는 평생을 우리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비평이라는 것이 그 대상으로서의 작품이 없으면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평 작업과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모두 다시 작품으로 떳떳이 돌아오고자 하는 목표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비평의 실천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의 비평은 그 방법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작품의 의미에 활기를 불러일으켜 주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김윤식 교수는 문단비평과 강단비평의 간격을 없애버린 비평가다. 김 교수는 당대 문학의 과제를 전체적인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문학사적 사실이 지니는 문제성을 당대의 문학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김 교수가 자신의 수많은 저서와 평문들에서 끈질기게 다뤄온 것은 우리 문학에서 근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김 교수가 먼저 선택한 것이 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역사적 체계화 작업이다. 김 교수가 자료를 조사 정리하고 사()적인 맥락을 세워나가면서 체계화한 한국 근대문학 비평은 우리 문학이 추구해온 문학적 근대성의 자기규정과 그 논리에 대한 해석이었음은 물론이다.

  김 교수의 비평사 연구는 문학을 다른 어떤 사상으로 대치시켜 놓기 위한 작업은 결코 아니다. 그는 문학의 위상을 그 사회 문화적 논리의 그물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고자 한다. 김 교수의 대표적 업적으로 손꼽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바로 이러한 작업의 첫 성과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이 작업에 뒤이어 한국의 근대비평가들을 자신이 엮은 비평사의 틀 속으로 담아나간다. 방대한 규모의 비평적 전기로 그 문학적 삶의 비극성을 재구(再構)해낸 임화 연구를 비롯해 박영희, 백철, 이헌구, 최재서 등에 대한 연구에서 김 교수가 비평사의 그물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윤식 교수의 소설 읽기는 작가와 비평가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맞서는 작업에 해당한다. 이 맞서기 작업의 첫 대상이 이광수였음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라는 저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맞서기 작업은 승부를 결정짓는 싸움은 아니다. 서투른 독자들은 김 교수에 의한 이광수 극복을 운위(云謂)할지도 모르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이광수를 오늘의 현실 속에 다시 세우고 그와 함께 문학과 역사를 논하며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소설을 예술이라고 믿었던 김동인의 오만한 모습도 김 교수의 어깨너머에 보이고, 관점의 중립을 소설적 미덕으로 자랑했던 염상섭도 김 교수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천재 이상도 김 교수의 왼쪽에서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김 교수와 동시대를 살아온 최인훈도, 이청준도, 박완서도 그 뒤에 둘러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모든 작가에게 김 교수는 집요하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과 소설적 아이러니의 문제를 다시 묻고 대답을 재촉한다.

  이 쉼 없는 대화와 맞서기를 통해 김 교수는 작가를 일떠세우고 딴전부리는 작가를 채근하며 그들과 함께 문학과 역사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통해서 김윤식 교수가 극복하고자 한 것은 소설의 형식에 미학적 요건을 부여해온 많은 이론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근대소설의 운명을 논하기 위해 김 교수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을 극복해야 했고 루시아 골드만의 숨은 신을 우리 소설 속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세상을 떠나셨다. 김 교수의 비평 작업은 언제나 삶과 예술의 총체적 의미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은 후학들에게 우리 문학사 전체의 무게만큼이나 벅차다. 하지만 이 짐을 감당해야 할 후학들은 사실 행복하다. 아무런 짐의 무게도 가늠할 수 없던 때에 비평의 논리와 방법에 홀로 매달려야 했던 김 교수의 힘든 노력에 비하면, 감당해야 할 몫을 그 무게만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김윤식 교수님! 이제 펜을 놓으시고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교수신문 2018.11.05.)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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