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폰에 매달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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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동영상 화면을 재미있어 하면서 보는 사람, 뉴스를 보는 사람, 만화 화면을 펼쳐보는 사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 모두가 그 작은 화면에 열중이다.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길거리에서도 공원의 산책길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이 새로운 환경의 변화와 매체의 특성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이 안 팔린다고 야단이다. 서점에 내놓은 책 가운데 그나마 팔리는 것은 자기개발서이거나 취업 준비용이 많다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신간 소설도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니 출판업계가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독서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출판계와 서적시장이 불황이란다.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책 대신 스마트 폰을 들고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액은 250만원을 조금 넘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 통계자료에서 가구당 오락·문화 부문 지출이 월평균 192000원이라고 한다. 전년보다 거의 10% 증가했단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서는 이 자료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월 평균 도서 구매 비용이 4960원이라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가구당으로 따지면 월평균 도서 구매비가 명목액 기준으로 12000원 정도이지만, 2006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치를 두고 가구당 한 달에 책 한 권 정도를 구매하고 있다는 뜻으로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들의 학습용 참고서 구매를 제외하고 본다면, 집에서 책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고급 커피숍에서 지불하는 커피 한 잔 값 정도에 불과한 액수가 한 달에 책을 사는 데에 쓰는 돈이라고 말하면 좀더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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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면, 요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책 타령이냐고 핀잔을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달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사지 않는 것을 빠듯한 살림살이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가 134000원이었다는 통계가 바로 뒤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매달 지출하는 여행비용을 비롯하여 영화 구경이나 공연 관람, 서적 구입 등 문화 오락비에 버금갈 정도로 통신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1인당 35천원 가까이 통신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식구마다 모두 자기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물론 책 대신 스마트 폰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스마트 폰을 누르면 찾을 수가 있으니 구태여 돈을 써서 책을 사고 답답하게 책장을 또 넘겨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스마트 폰의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면 그런 말에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책 읽기를 말하면 독서는 자기 취미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대학 입시에 매달려 지겹게 책과 씨름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 취업 준비로 다시 손에 잡은 것이 각종 시험 준비서 뿐이었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직장으로 얻어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아예 책을 펼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주어진 업무에 시달리고 반복되는 모임에 지쳐 돌아오면 집에 들어와 책장을 넘길 틈도 없다. 자녀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는데 집안 살림에 쫓기면서 주부들이 언제 혼자서 책을 들고 읽어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바쁘고 여유가 없고 한가하게 책장을 넘길 틈이 없다. 그러니 여간 결심이 아니고서는 서점이라도 한번 들러 책 한 권 사들고 오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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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책 읽기가 개인의 취향이나 관심과 연관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데에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따질 일은 더욱 아니다. 책 읽기는 교양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책 읽기는 자기 집중을 필요로 한다. 텔레비전의 화면이나 스마트 폰 속의 동영상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지만 책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내용을 따라간다. 책 읽기는 사고의 집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해와 비판, 분석과 성찰의 힘을 키워준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생활 속에서 필수의 영역이지 개인적 취향에 따르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책 읽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늘 곁에 책을 펼쳐놓아야 한다. 자신이 직접 서점에 가서 서가에 진열된 책들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직접 책을 사는 데까지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낼 일은 아니다. 우선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을 잘 생각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책은 혼자서 읽을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함께 꾸준히 읽어갈 동료가 있다면 훨씬 좋다. 집안 식구들끼리라든지 직장 동료들이든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을 읽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문화 활동이 어디 있겠는가? 책 읽기는 습관화하기 전까지는 생활 속에 터잡기 어렵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책 읽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책 읽기를 시작하면 큰 부담 없이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다. 책 읽기가 고상한 취미에서 고급한 문화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평생 책을 끼고 살아왔다. 나의 책 읽기는 내 문학 공부의 출발이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가 일종의 직업이 되면 때로는 짜증나고 힘이 든다. 텍스트를 가운데 두고 작가와 맞서야 하는 일이 늘 피곤하다. 그러므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즐겁고 편한 책 읽기를 권한다. 되도록이면 한 달에 한 권씩 새로 나온 시집을 사서 읽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어보는 일이라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큰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작은 시집 한 권이지만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정채(精彩)의 언어가 거기에 담겨 있다. 온통 더럽혀진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벗어나 정제된 언어 표현의 묘미를 오롯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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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의 일이다. 집집마다 거실의 장식장을 걷어내고 그것을 서가로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났었다. 생활 속에서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안이었다. 그때는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파트의 거실 벽에 책장을 세우고 책을 가지런히 꽂아둔 집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운동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커다란 TV가 벽면을 장식하고 근사한 도자기나 사진틀로 가득 찬 새로운 장식장이 서가를 다시 퇴출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거실에 서가를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은 호응에도 불구하고 왜 생활 속의 책 읽기로 발전하지 못하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책 읽기를 생활 속에 정착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삶은 스스로를 황폐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사고력과 판단력을 키우지 않으면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사라진다. 인간이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만 매달리게 되면 결국은 모두가 야만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 폰에만 매달린 채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도 책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첨단의 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참다운 태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 자극에만 길들여지는 스마트 폰 시대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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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없 2020.08.06 07:56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자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꼭 종이책이어야 하나요?

  2. kwonsnu 2020.08.06 19:0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자책은 앞으로 출판이 나아가야할 큰 방향의 하나이지요.

세계어로서의 한국어

 

미국의 현대언어협회(MLA)가 최근 조사 보고한 미국 대학의 외국어 강좌와 수강생 숫자가 흥미롭다. 그동안 대학에서 가장 많이 가르쳤던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유럽 지역 언어의 수강생이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어의 경우 2009년도에 86만여 명이 수강하여 최고치를 보였지만 지난 10년 동안 점차 줄어들어서 2016년도에는 71만여 명이 되었다. 프랑스어도 20만 명을 넘던 수강생이 같은 기간 동안 17만 명으로 줄었다. 동양의 언어 가운데 일본어는 2009년도에 최고 72천여 명이었던 것이 2016년에 68천명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국어의 경우도 2013년도에 최고 61천여 명에서 53천여 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어의 경우 지속적으로 강좌 수가 늘어나고 수강생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은 52백여 명이었데 2016년도의 통계를 보면 14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거의 3배 정도 증가했다. 외국어 수강생 수가 이렇게 큰 증가 추세를 보여주는 경우는 한국어가 유일하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미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에서는 한국어가 가장 규모가 큰 외국어 강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영국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으며, 동구권의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는 한국어가 인기 있는 외국어로 손꼽힌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도의 경우도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가 늘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 지역의 이집트에서도 한국어 교육이 시작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코스타리카,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지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이 이렇게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물론 여기에는 ‘K 이니 ‘K 드라마니 하는 한류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어 교육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전파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은 그 방법과 내용을 체계화한 이론적 기반이 여전히 허약하다.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학마다 제도와 여건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이 큰 차이를 드러낸다. 교재 내용과 그 구성도 서로 다르고 교육 방법도 제각각이다. 교재가 풍부하지 않으니 교육 내용도 부실한 경우가 많고, 교육 단계별 수준이 고르지 못하게 되니 그 정도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방법과 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고 교과 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성해야만 한다. 각국의 실정에 맞춰 교과 내용을 조정하고 그 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 방법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일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지만 교육 당국에서도 이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도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언어 문자의 규범에 따라 한국어와 한글을 다듬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글이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글의 모든 글자의 표준 글꼴을 제대로 정하고 그 정확한 발음 방법을 따르기 쉽게 정해야 한다. 항상 논란이 되고 있는 일이지만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방식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글 맞춤법이나 국어 표준어의 규정 등에도 미비한 점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언어와 문자의 사용에서 그 규범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면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 한국어는 결코 작은 언어가 아니다. 세계 언어 인구의 분포로 볼 때 한국어는 그 크기가 열다섯 번째 정도로 손꼽힌다. 정확한 수치를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보다 언어 인구가 조금 많고 터키어와는 비슷하다. 75백만이 넘는 인구가 한반도를 비롯하여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한국어를 사용한다. 더구나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도 활발한 교역을 통해 국제 무역 규모가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서 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한국어는 더 이상 우리 민족만의 언어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배우고 있는 세계어의 하나이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어의 힘과 그 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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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백중혹은 풍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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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백중(七月 百中)’. 백종(百種) 혹은 백중(百衆)이라고도 했고 중원(中元)이라고도 칭했다. 음력 7월 보름 명절을 말한다. 예전의 세시풍속을 보면 음력에 따라 24절기로 나뉘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백중도 아주 중요한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관습적으로 이어온 의식과 놀이 가운데 하나가 백중놀이이다. 하지만 지금은 백중이라는 말조차 들어보기 어렵다. 백중 장터니 백중 놀이니 하는 것도 모두 사라져버린 옛 풍속이 되고 말았다.

백중은 불가(佛家)의 우란분회(盂蘭盆會), 또는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불경 가운데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건련(目犍連)의 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믿음으로 열린 혜안(慧眼)을 얻게 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가 극락으로 가지 못하고 아귀보(餓鬼報)를 받아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목련은 자신의 신통력을 발휘하여 어머니를 아귀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업()이 두터워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가 없었다. 목련은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것을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이 하안거를 마치는 자자일(自恣日)에 해당하는 음력 715일에 부처님과 승려에게 백 가지의 음식과 다섯 가지의 과일 등을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면 비원(悲願)을 이루는 것은 물론 돌아가신 어머니도 천계(天界)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 가르침을 받은 목련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들어 실천함으로써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원하였다. 이것이 우란분재의 시초다. 이 특이한 불교 의식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전래하였고 고려시대의 경우에는 실제의 의례 내용을 소개하는 문헌 자료도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불가의 우란분회는 음력 715일에 갖은 음식과 과일을 마련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거행된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공양하여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비슷하게 우란분절에는 백등(白燈)을 밝혀 죽은 조상을 추모한다. 이러한 의식이 민가에도 전해져 칠월 보름날을 망혼일(亡魂日)’이라고 하여 조상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네가 알고 있는 칠월 백중은 불가의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백중은 세시풍속으로 반복되면서 널리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농촌생활에서는 봄에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여름철이 되기까지 밭과 논의 김매기에 가장 바쁘게 지낸다. 그런데 음력 7월 보름 무렵이면 세 벌 김매기가 다 끝나고 지독한 무더위가 시작된다. 농사꾼들이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에 해당된다. 더위를 피하면서 곧 돌아올 가을을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이 때를 맞춰 생겨난 것이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이다. 농사꾼들은 이날을 호미씻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된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즐기면서 더위에 시달린 심신을 달래고 힘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농사를 크게 짓는 집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일꾼들에게 용돈(백중돈)을 주고 즐겁게 쉴 수 있도록 하였다. 머슴들과 일꾼들은 이날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을 받고 새 옷에 돈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는 머슴을 소에 태우거나 가마를 태워 흥겨운 하루를 보내도록 했다. 주인댁으로부터 받은 백중돈을 가지고 일꾼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겼다. 이날에 맞춰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 한복판에는 특별히 백중장이 열려 장사꾼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장터에는 풍악이 울리고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여러 놀이판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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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이 쓴 작품 가운데 칠월 백중이라는 흥미로운 시가 있다. 해방 직후인 1948년 잡지 문장에 발표된 작품이다. 당시 백석은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정착해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가 서울의 친구들에게 보낸 원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칠월 백중날에 볼 수 있는 고향의 풍속을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을 통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일종의 풍속시또는 풍물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내용을 보면 백중날 약물터에 크게 장터가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머슴이나 일꾼들이 백중날을 즐기는 모습보다는 약물터에서 열린 백중 장터를 구경하러 가는 것은 새악시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백중날 약물터에 열린 장터 구경을 나가는 새악시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이 가볍다. 이들은 고개를 넘고 넘어 약물터 백중 장터에 모여든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과 함께 어울린다. 백중날 약물터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시적 공간 속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면서 시적 감흥도 고조된다. 이 정서적 고양 상태에서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모두가 후줄근하게 젖지만, 오히려 마음은 붕가집(친정) 갈 생각으로 들떠 있다. 한여름 보름 정도를 친정에 가서 지내다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언어적 표현 가운데에는 생소한 평안도 방언이 다수 활용되고 있다. 자기 지역의 방언을 그대로 시적 언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시인 자신이 토착적인 방언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언의 활용을 통해 시의 내용에서 일상적 경험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을에서는 세 벌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 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도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시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백석의 시 칠월 백중은 소박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농민들의 삶의 모습이 토속적 어휘를 통해 감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시는 다채로운 시적 심상을 활용하여 시적 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하면서 그 속에 고향이라는 원초적인 체험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놓는다. 이러한 시의 방법은 한국의 근대시가 감각적으로 섬세해지고 정서적으로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텍스트는 전체 26행으로 이어지면서 연의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시적 화자가 전체적인 시상의 흐름 속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상은 새악시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악시는 동네 처녀들이 아니다. 마을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색시들을 말한다. 칠월 백중날 새악시들이 한껏 모양을 내고는 약물터로 나가는 모습과 장터를 이루며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흥겹게 그려진다.

시의 텍스트는 시적 의미의 전개 과정으로 볼 때 모두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시적 진술 자체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하는데라는 연결 어미로 이어진 부분이 각 단락을 경계를 자연스럽게 표시한다. 첫 단락은 1행에서부터 3행까지로 이어진다.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위해 개장 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칠월 백중(百中), 음력 7월 보름날이 된다. 여기서 개장 취념이란 개장국(지금은 보신탕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을 끓여 먹기 위해 몇몇이 그 비용을 나누어 내는 일을 말한다. ‘취념은 추렴(出斂)에서 온 말이다.마을에서 논에 모내기를 한 후 세 벌 김을 다 매고 나면 백중날이 된다. 지방에 따라 풍습이 다르지만 바쁜 농사일을 하루 쉬면서 사람들이 함께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나누어 먹으면서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머슴들에게 새 옷을 해 입히고 용돈을 나누어 주고 하루 잘 쉬며 놀도록 해준다. 시의 텍스트에서는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라고 서술하고 있다.

둘째 단락은 4행부터 11행까지 백중날 새악시들이 한껏 멋을 내어 나들이옷을 차려 입고 약물터로 놀러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칠월 백중이라는 세시풍속의 내용과 함께 여성들의 복식까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서도 11행은 약물터로 가는데라고 끝이 난다. 백중날 약물터에 놀이를 나가는 새악시들의 옷치레부터 수선스럽게 묘사된다.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껑충하게 짧은 치마에 자줏빛 옷고름이 길게 느러진 적삼을 입고 있다. 그런데 그 치마는 천진푀 치마라고 한다. 중국 천진(天津)에서 생산된 고급 베(천진포)로 만든 치마를 말한다. 새악시들이 입고 있는 적삼은 쇠주푀 적삼이다. 이것도 중국 소주(蘇州) 지방에서 생산된 고급 베(소주포)로 만든 적삼을 가리킨다. 중국과 물산 교류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새로 댕기를 드렸고 발에는 네날백이 따배기신(짚신)을 새로 내어 맨발에 신고 있다. 치마와 적삼, 댕기 머리에 따배기신을 묘사한 부분은 서로 대구(對句) 형식으로 이어진다. 새악시들이 평상시에 입는 치마는 그 길이가 발등으로 내려올 정도로 짧은 물팩치기’(치마의 단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짧은 치마)이다. 한 여름 나들이옷이니 치마의 길이가 짧다. 버선도 신지 않은 맨발에 따배기신을 신은 모습이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당시 농촌의 젊은 여성들의 차림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셋째 단락은 12행부터 18행까지로 이어진다. 약물터로 가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이다. 무더운 날씨이지만 들길에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노리개를 붙이고 허리에는 주머니를 찼는데, 그 속에 돈이 들어 있다. 고개를 넘어 약물터에 도달한다. 넷째 단락은 19행부터 22행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약물터의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오랜만에 친정집 식구들도 만난다. 여기 등장하는 붕가집이라는 말은 평안도 방언이다. 흔히 가까운 친척집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면 이 말은 친척집이 아니라 친정집을 뜻한다. ‘친가또는 본댁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시집온 후 오랜만의 나들이에서 친정집 식구들을 만났으니 서로 반가울 뿐이다. 함께 음식도 사먹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에 옷이 후줄근하게 젖었지만 마음은 즐겁다. ‘호주를하니라는 말은 비에 젖어 옷이 후줄근하게 되어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 시는 새악시가 친정집에 가는 장면으로 시상을 마감하고 있다. 농삿일이 좀 한가로워졌기 때문에 시집살이에서 벗어난 새악시는 친정에 갈 수 있게 된다. 친정에서 보름 가까이 지내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비에 젖은 옷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여긴다. 이 마지막 단락의 서설 내용을 보면 시에 등장하는 새악시라는 말이 처녀애가 아니라 갓 시집온 새아씨임을 알 수 있다. ‘붕가집이라는 말을 친척집, 친구네집, 등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지만 마지막 단락의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으로 가면서도 중요한 농삿일들이 끝났으니 평안하게 집살이를 할 것이라는 설명을 보면 봉가집이 친정집 곧 본가집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의 감각성과 사실성이다. 이 같은 기법은 다양하게 선택된 제재 속에서 민중의 진솔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각각의 시행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듯한 서술적 효과를 드러내도록 잇달아 있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진술의 묘사적 설명 방법은 시적 이미지들을 공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동시에 그 공간 자체를 한 폭의 이야기로 꾸며낸다. 이 시가 이야기조의 서술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경과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시적 대상을 그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3

백석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공간은 대체로 고향의 토속적인 풍물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고향이라는 공간과 갖가지 풍물에 대한 체험이 그만큼 시인의 의식 속에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시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거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회고 취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현실 속에서 절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삶의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백석은 고향의 풍물과 토속적인 인간미를 그의 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서 현실의 삶 가운데 훼손된 인간적 가치와 그 회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석의 본명은 기행(夔行)이다. 평북 정주 태생으로 1929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년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된 후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장학금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대학 영어사범과에서 수학했다. 1934년 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였으며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발간하게 된 월간 종합잡지 조광(朝光)의 창간 작업에 참여하였다.

19358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막, 여우난골족등의 시를 잇달아 발표하였다. 1936년 자가본으로 시집 󰡔사슴󰡕을 한정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시집에 수록한 작품들은 대체로 시인의 고향인 평안도 지역의 풍습을 소재로 하여 소박한 민중의 삶과 거기에 깃들여 있는 토속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8년까지 함흥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야, 남행시초(연작), 함주시초, 바다등을 발표하였으며, 교직을 사임하고 경성으로 돌아온 뒤 산중음(연작), 석양, 고향,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등을 남겼다. 1940년 만주 옮겨가서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42년 만주 안둥[安東] 세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목구, 북방에서」 「귀농,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등을 발표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 정주로 돌아왔다.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이 무렵 시 적막강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등이칠월 백중과 함께 친구인 소설가 허준의 주선으로 서울 문단에 소개됨으로써 그의 건재함이 널리 알려졌다. 1949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을 번역 출간한 후부터 소련 문학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였다.

한국전쟁 뒤에도 백석의 활동이 이어진다. 1956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편집위원을 맡았으며, 1957년 동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정현웅의 삽화를 넣어 간행하였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의 국영협동조합에서 일하면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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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항구의 벚꽃

 

벚꽃의 계절이다. 이제는 전국 각지에 손꼽을 만한 벚꽃의 절경이 수도 없이 많다. 군항제(軍港祭)로 유명한 진해의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여의도 뚝방길에 늘어선 벚꽃, 경주 보문단지 가는 길을 덮은 하얀 꽃 터널, 그리고 익산에서 군산항으로 가는 국도변 하얀 벚꽃의 대행진 등은 내가 보았던 벚꽃의 절경으로 오래 기억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남도 마산(馬山)의 벚꽃이 유명했단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들에 의해 일찍 개항된 항구였던 터라서 벚꽃이 많았다고 적혀 있다. 신마산 주변의 천변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밤 벚꽃놀이가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의 이름조차 사라진 곳이 마산이다.

*

내가 마산의 벚꽃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사연은 따로 있다. 시인 박두진 선생의 시 꽃과 항구(港口)때문이다. 이 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나도 이 시가 어느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시는 1962년에 펴낸 시집 󰡔거미와 성좌(星座)󰡕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을 눈여겨 챙겨본 사람도 별로 없다.

나무는 철을 따라
가지마다 난만히 꽃을 피워 흩날리고,
인간은 영혼의 뿌리 깊이
눌리면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간직한다.
꽃은 그 뿌리에 근원하여
한 철 바람에 향기로이 나부끼고

자유는 피와 생명에 뿌리하여
영혼의 밑바닥 꺼지지 않는 근원에서 죽지 않고 탄다.
꽃잎. 꽃잎. 봄 되어 하늘에 구름처럼 일더니
그 바다, 꽃그늘에 항구는 졸고 있더니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그 소녀와 소년들과 젊은 속에 맥 뛰는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는
살아서 누리려는 자유에의 비원이
죽음.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강하고나.
피는 꽃보다 값지고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 ‘’ ‘불꽃이라는 시어는 아주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함축된 의미도 폭이 넓고 깊다. 시의 텍스트를 따라 읽어 보면 시적 배경으로 항구가 등장하고 그 항구에 꽃이 피어난다. 그런데 그 항구와 꽃이 예사로운 꽃 이야기가 아니다.

1연에서 은 철에 따라 나무에서 피어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 꽃에 열매가 맺힌다. 그래서 그 생명이 여기저기 퍼지고 다시 살아난다. 이 순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2연은 시적 화자의 시선이 인간에게로 옮겨진다. 1연의 나무에서 사람 쪽으로 그 대상이 바뀐 것이다. 사람은 마음 속 깊이 인간으로서의 본능처럼 누군가에게 억눌리면 속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 억압에 저항하고 이에 맞서고자하는 항거의 정신은 인간의 본능이다. 결국 1, 2연은 서로 좋은 뜻으로 그 의미가 대응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유의 불꽃이 타오르게 된다. 3, 4연도 비슷한 의미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나무의 꽃이 그 뿌리에 근원을 두고 피어나 한 철을 향기롭게 나부끼듯이 자유라는 것도 피와 생명에 뿌리를 두고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그런데 5연부터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5연에서 항구에 구름처럼 꽃이 피어났고 그 꽃그늘에 항구가 졸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적 배경으로 꽃이 피는 평화로운 항구가 등장한다. 그리고 뒤이어 6연은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라는 구절에서 시적 의미의 대응이 완전히 무너진다. 자유가 불꽃으로 살아나지 못한 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름처럼 피어나 향기롭게 나부끼던 항구의 꽃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피안개에 덮여 사그라진 것이다. 7연에서는 소년과 소녀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고 8연은 살아서 누리고자 하는 자유에의 비원이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더욱 강함을 설명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의에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9연에서 피는 꽃보다 값지고 /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라고 시상을 매듭짓는다. ‘이 서로 대조되는 가운데 자유에의 불꽃죽음과 대비된다. 자유를 위한 열망과 그 희생의 의미가 얼마나 거룩하고 강렬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

시인 박두진이 이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꽃 피는 항구는 19604월 마산(馬山)의 풍경이다. ‘진해군항제이전에는 마산항 일대의 봄 벚꽃이 유명했다니 시인의 눈길을 끌 만하다. 그런데 이 화려한 벚꽃의 항구 도시에 피안개가 어린다. 1960년 봄의 일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독재 권력의 장기 집권을 위해 3. 15선거에 엄청난 부정을 획책한다.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선거 부정이 전국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마산 지역도 부정 선거가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항거하여 선거 당일인 315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는데, 주로 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그때 집회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 군은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그는 실종된 지 거의 한달 뒤에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닷속에 던져졌다가 주검으로 떠올랐다. 진압 경찰이 최루탄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411일 김주열 군이 처참한 주검이 바다위로 떠오르자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떨며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항의 시위가 전국으로 격렬하게 확대된다. 우리 민족의 민주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 크게 꽃을 피운 4·19 학생혁명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두진은 이 시에서 마산이라는 지명 대신에 항구라고 적었고, 김주열 군의 죽음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라고 빗대어 설명했다. 그리고 항구의 하늘을 가리는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시의 전반부에 펼쳐냄으로써 엄혹했던 고통의 시대를 밀어낸 거룩한 항쟁을 민주와 자유의 꽃의 축제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유에의 불꽃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시인의 선언은 자유 민주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김주열 군의 희생과 함께 4월 혁명 정신의 고귀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주열은 박두진의 시를 통해 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도 4월의 마산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하얀 벚꽃이 아름다울까? 그런데 그 꽃을 보며 김주열이라는 아름다운 불꽃을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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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첨언하고 싶다. . 문화재청은 금년도에 “4·19 혁명 60돌을 맞아 혁명 문화유산’ 7건을 민주화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은 위의 부산일보김주열 열사 사진을 비롯한 4월 학생혁명 관련 기록물들이다. 1960412부산일보에 특종 게재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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