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어로서의 한국어

 

미국의 현대언어협회(MLA)가 최근 조사 보고한 미국 대학의 외국어 강좌와 수강생 숫자가 흥미롭다. 그동안 대학에서 가장 많이 가르쳤던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유럽 지역 언어의 수강생이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어의 경우 2009년도에 86만여 명이 수강하여 최고치를 보였지만 지난 10년 동안 점차 줄어들어서 2016년도에는 71만여 명이 되었다. 프랑스어도 20만 명을 넘던 수강생이 같은 기간 동안 17만 명으로 줄었다. 동양의 언어 가운데 일본어는 2009년도에 최고 72천여 명이었던 것이 2016년에 68천명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국어의 경우도 2013년도에 최고 61천여 명에서 53천여 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어의 경우 지속적으로 강좌 수가 늘어나고 수강생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은 52백여 명이었데 2016년도의 통계를 보면 14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거의 3배 정도 증가했다. 외국어 수강생 수가 이렇게 큰 증가 추세를 보여주는 경우는 한국어가 유일하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미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에서는 한국어가 가장 규모가 큰 외국어 강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영국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으며, 동구권의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는 한국어가 인기 있는 외국어로 손꼽힌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도의 경우도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가 늘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 지역의 이집트에서도 한국어 교육이 시작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코스타리카,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지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이 이렇게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물론 여기에는 ‘K 이니 ‘K 드라마니 하는 한류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어 교육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전파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은 그 방법과 내용을 체계화한 이론적 기반이 여전히 허약하다.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학마다 제도와 여건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이 큰 차이를 드러낸다. 교재 내용과 그 구성도 서로 다르고 교육 방법도 제각각이다. 교재가 풍부하지 않으니 교육 내용도 부실한 경우가 많고, 교육 단계별 수준이 고르지 못하게 되니 그 정도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방법과 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고 교과 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성해야만 한다. 각국의 실정에 맞춰 교과 내용을 조정하고 그 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 방법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일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지만 교육 당국에서도 이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도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언어 문자의 규범에 따라 한국어와 한글을 다듬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글이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글의 모든 글자의 표준 글꼴을 제대로 정하고 그 정확한 발음 방법을 따르기 쉽게 정해야 한다. 항상 논란이 되고 있는 일이지만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방식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글 맞춤법이나 국어 표준어의 규정 등에도 미비한 점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언어와 문자의 사용에서 그 규범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면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 한국어는 결코 작은 언어가 아니다. 세계 언어 인구의 분포로 볼 때 한국어는 그 크기가 열다섯 번째 정도로 손꼽힌다. 정확한 수치를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보다 언어 인구가 조금 많고 터키어와는 비슷하다. 75백만이 넘는 인구가 한반도를 비롯하여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한국어를 사용한다. 더구나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도 활발한 교역을 통해 국제 무역 규모가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서 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한국어는 더 이상 우리 민족만의 언어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배우고 있는 세계어의 하나이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어의 힘과 그 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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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백중혹은 풍속시

1

칠월 백중(七月 百中)’. 백종(百種) 혹은 백중(百衆)이라고도 했고 중원(中元)이라고도 칭했다. 음력 7월 보름 명절을 말한다. 예전의 세시풍속을 보면 음력에 따라 24절기로 나뉘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백중도 아주 중요한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관습적으로 이어온 의식과 놀이 가운데 하나가 백중놀이이다. 하지만 지금은 백중이라는 말조차 들어보기 어렵다. 백중 장터니 백중 놀이니 하는 것도 모두 사라져버린 옛 풍속이 되고 말았다.

백중은 불가(佛家)의 우란분회(盂蘭盆會), 또는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불경 가운데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건련(目犍連)의 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믿음으로 열린 혜안(慧眼)을 얻게 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가 극락으로 가지 못하고 아귀보(餓鬼報)를 받아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목련은 자신의 신통력을 발휘하여 어머니를 아귀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업()이 두터워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가 없었다. 목련은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것을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이 하안거를 마치는 자자일(自恣日)에 해당하는 음력 715일에 부처님과 승려에게 백 가지의 음식과 다섯 가지의 과일 등을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면 비원(悲願)을 이루는 것은 물론 돌아가신 어머니도 천계(天界)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 가르침을 받은 목련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들어 실천함으로써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원하였다. 이것이 우란분재의 시초다. 이 특이한 불교 의식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전래하였고 고려시대의 경우에는 실제의 의례 내용을 소개하는 문헌 자료도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불가의 우란분회는 음력 715일에 갖은 음식과 과일을 마련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거행된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공양하여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비슷하게 우란분절에는 백등(白燈)을 밝혀 죽은 조상을 추모한다. 이러한 의식이 민가에도 전해져 칠월 보름날을 망혼일(亡魂日)’이라고 하여 조상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네가 알고 있는 칠월 백중은 불가의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백중은 세시풍속으로 반복되면서 널리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농촌생활에서는 봄에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여름철이 되기까지 밭과 논의 김매기에 가장 바쁘게 지낸다. 그런데 음력 7월 보름 무렵이면 세 벌 김매기가 다 끝나고 지독한 무더위가 시작된다. 농사꾼들이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에 해당된다. 더위를 피하면서 곧 돌아올 가을을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이 때를 맞춰 생겨난 것이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이다. 농사꾼들은 이날을 호미씻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된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즐기면서 더위에 시달린 심신을 달래고 힘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농사를 크게 짓는 집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일꾼들에게 용돈(백중돈)을 주고 즐겁게 쉴 수 있도록 하였다. 머슴들과 일꾼들은 이날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을 받고 새 옷에 돈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는 머슴을 소에 태우거나 가마를 태워 흥겨운 하루를 보내도록 했다. 주인댁으로부터 받은 백중돈을 가지고 일꾼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겼다. 이날에 맞춰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 한복판에는 특별히 백중장이 열려 장사꾼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장터에는 풍악이 울리고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여러 놀이판이 열렸다.

2

시인 백석이 쓴 작품 가운데 칠월 백중이라는 흥미로운 시가 있다. 해방 직후인 1948년 잡지 문장에 발표된 작품이다. 당시 백석은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정착해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가 서울의 친구들에게 보낸 원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칠월 백중날에 볼 수 있는 고향의 풍속을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을 통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일종의 풍속시또는 풍물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내용을 보면 백중날 약물터에 크게 장터가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머슴이나 일꾼들이 백중날을 즐기는 모습보다는 약물터에서 열린 백중 장터를 구경하러 가는 것은 새악시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백중날 약물터에 열린 장터 구경을 나가는 새악시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이 가볍다. 이들은 고개를 넘고 넘어 약물터 백중 장터에 모여든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과 함께 어울린다. 백중날 약물터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시적 공간 속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면서 시적 감흥도 고조된다. 이 정서적 고양 상태에서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모두가 후줄근하게 젖지만, 오히려 마음은 붕가집(친정) 갈 생각으로 들떠 있다. 한여름 보름 정도를 친정에 가서 지내다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언어적 표현 가운데에는 생소한 평안도 방언이 다수 활용되고 있다. 자기 지역의 방언을 그대로 시적 언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시인 자신이 토착적인 방언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언의 활용을 통해 시의 내용에서 일상적 경험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을에서는 세 벌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 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도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시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백석의 시 칠월 백중은 소박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농민들의 삶의 모습이 토속적 어휘를 통해 감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시는 다채로운 시적 심상을 활용하여 시적 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하면서 그 속에 고향이라는 원초적인 체험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놓는다. 이러한 시의 방법은 한국의 근대시가 감각적으로 섬세해지고 정서적으로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텍스트는 전체 26행으로 이어지면서 연의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시적 화자가 전체적인 시상의 흐름 속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상은 새악시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악시는 동네 처녀들이 아니다. 마을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색시들을 말한다. 칠월 백중날 새악시들이 한껏 모양을 내고는 약물터로 나가는 모습과 장터를 이루며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흥겹게 그려진다.

시의 텍스트는 시적 의미의 전개 과정으로 볼 때 모두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시적 진술 자체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하는데라는 연결 어미로 이어진 부분이 각 단락을 경계를 자연스럽게 표시한다. 첫 단락은 1행에서부터 3행까지로 이어진다.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위해 개장 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칠월 백중(百中), 음력 7월 보름날이 된다. 여기서 개장 취념이란 개장국(지금은 보신탕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을 끓여 먹기 위해 몇몇이 그 비용을 나누어 내는 일을 말한다. ‘취념은 추렴(出斂)에서 온 말이다.마을에서 논에 모내기를 한 후 세 벌 김을 다 매고 나면 백중날이 된다. 지방에 따라 풍습이 다르지만 바쁜 농사일을 하루 쉬면서 사람들이 함께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나누어 먹으면서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머슴들에게 새 옷을 해 입히고 용돈을 나누어 주고 하루 잘 쉬며 놀도록 해준다. 시의 텍스트에서는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라고 서술하고 있다.

둘째 단락은 4행부터 11행까지 백중날 새악시들이 한껏 멋을 내어 나들이옷을 차려 입고 약물터로 놀러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칠월 백중이라는 세시풍속의 내용과 함께 여성들의 복식까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서도 11행은 약물터로 가는데라고 끝이 난다. 백중날 약물터에 놀이를 나가는 새악시들의 옷치레부터 수선스럽게 묘사된다.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껑충하게 짧은 치마에 자줏빛 옷고름이 길게 느러진 적삼을 입고 있다. 그런데 그 치마는 천진푀 치마라고 한다. 중국 천진(天津)에서 생산된 고급 베(천진포)로 만든 치마를 말한다. 새악시들이 입고 있는 적삼은 쇠주푀 적삼이다. 이것도 중국 소주(蘇州) 지방에서 생산된 고급 베(소주포)로 만든 적삼을 가리킨다. 중국과 물산 교류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새로 댕기를 드렸고 발에는 네날백이 따배기신(짚신)을 새로 내어 맨발에 신고 있다. 치마와 적삼, 댕기 머리에 따배기신을 묘사한 부분은 서로 대구(對句) 형식으로 이어진다. 새악시들이 평상시에 입는 치마는 그 길이가 발등으로 내려올 정도로 짧은 물팩치기’(치마의 단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짧은 치마)이다. 한 여름 나들이옷이니 치마의 길이가 짧다. 버선도 신지 않은 맨발에 따배기신을 신은 모습이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당시 농촌의 젊은 여성들의 차림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셋째 단락은 12행부터 18행까지로 이어진다. 약물터로 가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이다. 무더운 날씨이지만 들길에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노리개를 붙이고 허리에는 주머니를 찼는데, 그 속에 돈이 들어 있다. 고개를 넘어 약물터에 도달한다. 넷째 단락은 19행부터 22행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약물터의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오랜만에 친정집 식구들도 만난다. 여기 등장하는 붕가집이라는 말은 평안도 방언이다. 흔히 가까운 친척집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면 이 말은 친척집이 아니라 친정집을 뜻한다. ‘친가또는 본댁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시집온 후 오랜만의 나들이에서 친정집 식구들을 만났으니 서로 반가울 뿐이다. 함께 음식도 사먹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에 옷이 후줄근하게 젖었지만 마음은 즐겁다. ‘호주를하니라는 말은 비에 젖어 옷이 후줄근하게 되어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 시는 새악시가 친정집에 가는 장면으로 시상을 마감하고 있다. 농삿일이 좀 한가로워졌기 때문에 시집살이에서 벗어난 새악시는 친정에 갈 수 있게 된다. 친정에서 보름 가까이 지내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비에 젖은 옷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여긴다. 이 마지막 단락의 서설 내용을 보면 시에 등장하는 새악시라는 말이 처녀애가 아니라 갓 시집온 새아씨임을 알 수 있다. ‘붕가집이라는 말을 친척집, 친구네집, 등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지만 마지막 단락의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으로 가면서도 중요한 농삿일들이 끝났으니 평안하게 집살이를 할 것이라는 설명을 보면 봉가집이 친정집 곧 본가집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의 감각성과 사실성이다. 이 같은 기법은 다양하게 선택된 제재 속에서 민중의 진솔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각각의 시행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듯한 서술적 효과를 드러내도록 잇달아 있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진술의 묘사적 설명 방법은 시적 이미지들을 공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동시에 그 공간 자체를 한 폭의 이야기로 꾸며낸다. 이 시가 이야기조의 서술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경과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시적 대상을 그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3

백석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공간은 대체로 고향의 토속적인 풍물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고향이라는 공간과 갖가지 풍물에 대한 체험이 그만큼 시인의 의식 속에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시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거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회고 취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현실 속에서 절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삶의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백석은 고향의 풍물과 토속적인 인간미를 그의 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서 현실의 삶 가운데 훼손된 인간적 가치와 그 회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석의 본명은 기행(夔行)이다. 평북 정주 태생으로 1929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년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된 후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장학금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대학 영어사범과에서 수학했다. 1934년 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였으며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발간하게 된 월간 종합잡지 조광(朝光)의 창간 작업에 참여하였다.

19358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막, 여우난골족등의 시를 잇달아 발표하였다. 1936년 자가본으로 시집 󰡔사슴󰡕을 한정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시집에 수록한 작품들은 대체로 시인의 고향인 평안도 지역의 풍습을 소재로 하여 소박한 민중의 삶과 거기에 깃들여 있는 토속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8년까지 함흥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야, 남행시초(연작), 함주시초, 바다등을 발표하였으며, 교직을 사임하고 경성으로 돌아온 뒤 산중음(연작), 석양, 고향,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등을 남겼다. 1940년 만주 옮겨가서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42년 만주 안둥[安東] 세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목구, 북방에서」 「귀농,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등을 발표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 정주로 돌아왔다.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이 무렵 시 적막강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등이칠월 백중과 함께 친구인 소설가 허준의 주선으로 서울 문단에 소개됨으로써 그의 건재함이 널리 알려졌다. 1949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을 번역 출간한 후부터 소련 문학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였다.

한국전쟁 뒤에도 백석의 활동이 이어진다. 1956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편집위원을 맡았으며, 1957년 동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정현웅의 삽화를 넣어 간행하였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의 국영협동조합에서 일하면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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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항구의 벚꽃

 

벚꽃의 계절이다. 이제는 전국 각지에 손꼽을 만한 벚꽃의 절경이 수도 없이 많다. 군항제(軍港祭)로 유명한 진해의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여의도 뚝방길에 늘어선 벚꽃, 경주 보문단지 가는 길을 덮은 하얀 꽃 터널, 그리고 익산에서 군산항으로 가는 국도변 하얀 벚꽃의 대행진 등은 내가 보았던 벚꽃의 절경으로 오래 기억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남도 마산(馬山)의 벚꽃이 유명했단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들에 의해 일찍 개항된 항구였던 터라서 벚꽃이 많았다고 적혀 있다. 신마산 주변의 천변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밤 벚꽃놀이가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의 이름조차 사라진 곳이 마산이다.

*

내가 마산의 벚꽃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사연은 따로 있다. 시인 박두진 선생의 시 꽃과 항구(港口)때문이다. 이 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나도 이 시가 어느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시는 1962년에 펴낸 시집 󰡔거미와 성좌(星座)󰡕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을 눈여겨 챙겨본 사람도 별로 없다.

나무는 철을 따라
가지마다 난만히 꽃을 피워 흩날리고,
인간은 영혼의 뿌리 깊이
눌리면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간직한다.
꽃은 그 뿌리에 근원하여
한 철 바람에 향기로이 나부끼고

자유는 피와 생명에 뿌리하여
영혼의 밑바닥 꺼지지 않는 근원에서 죽지 않고 탄다.
꽃잎. 꽃잎. 봄 되어 하늘에 구름처럼 일더니
그 바다, 꽃그늘에 항구는 졸고 있더니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그 소녀와 소년들과 젊은 속에 맥 뛰는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는
살아서 누리려는 자유에의 비원이
죽음.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강하고나.
피는 꽃보다 값지고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 ‘’ ‘불꽃이라는 시어는 아주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함축된 의미도 폭이 넓고 깊다. 시의 텍스트를 따라 읽어 보면 시적 배경으로 항구가 등장하고 그 항구에 꽃이 피어난다. 그런데 그 항구와 꽃이 예사로운 꽃 이야기가 아니다.

1연에서 은 철에 따라 나무에서 피어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 꽃에 열매가 맺힌다. 그래서 그 생명이 여기저기 퍼지고 다시 살아난다. 이 순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2연은 시적 화자의 시선이 인간에게로 옮겨진다. 1연의 나무에서 사람 쪽으로 그 대상이 바뀐 것이다. 사람은 마음 속 깊이 인간으로서의 본능처럼 누군가에게 억눌리면 속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 억압에 저항하고 이에 맞서고자하는 항거의 정신은 인간의 본능이다. 결국 1, 2연은 서로 좋은 뜻으로 그 의미가 대응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유의 불꽃이 타오르게 된다. 3, 4연도 비슷한 의미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나무의 꽃이 그 뿌리에 근원을 두고 피어나 한 철을 향기롭게 나부끼듯이 자유라는 것도 피와 생명에 뿌리를 두고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그런데 5연부터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5연에서 항구에 구름처럼 꽃이 피어났고 그 꽃그늘에 항구가 졸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적 배경으로 꽃이 피는 평화로운 항구가 등장한다. 그리고 뒤이어 6연은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라는 구절에서 시적 의미의 대응이 완전히 무너진다. 자유가 불꽃으로 살아나지 못한 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름처럼 피어나 향기롭게 나부끼던 항구의 꽃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피안개에 덮여 사그라진 것이다. 7연에서는 소년과 소녀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고 8연은 살아서 누리고자 하는 자유에의 비원이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더욱 강함을 설명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의에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9연에서 피는 꽃보다 값지고 /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라고 시상을 매듭짓는다. ‘이 서로 대조되는 가운데 자유에의 불꽃죽음과 대비된다. 자유를 위한 열망과 그 희생의 의미가 얼마나 거룩하고 강렬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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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두진이 이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꽃 피는 항구는 19604월 마산(馬山)의 풍경이다. ‘진해군항제이전에는 마산항 일대의 봄 벚꽃이 유명했다니 시인의 눈길을 끌 만하다. 그런데 이 화려한 벚꽃의 항구 도시에 피안개가 어린다. 1960년 봄의 일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독재 권력의 장기 집권을 위해 3. 15선거에 엄청난 부정을 획책한다.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선거 부정이 전국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마산 지역도 부정 선거가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항거하여 선거 당일인 315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는데, 주로 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그때 집회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 군은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그는 실종된 지 거의 한달 뒤에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닷속에 던져졌다가 주검으로 떠올랐다. 진압 경찰이 최루탄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411일 김주열 군이 처참한 주검이 바다위로 떠오르자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떨며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항의 시위가 전국으로 격렬하게 확대된다. 우리 민족의 민주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 크게 꽃을 피운 4·19 학생혁명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두진은 이 시에서 마산이라는 지명 대신에 항구라고 적었고, 김주열 군의 죽음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라고 빗대어 설명했다. 그리고 항구의 하늘을 가리는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시의 전반부에 펼쳐냄으로써 엄혹했던 고통의 시대를 밀어낸 거룩한 항쟁을 민주와 자유의 꽃의 축제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유에의 불꽃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시인의 선언은 자유 민주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김주열 군의 희생과 함께 4월 혁명 정신의 고귀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주열은 박두진의 시를 통해 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도 4월의 마산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하얀 벚꽃이 아름다울까? 그런데 그 꽃을 보며 김주열이라는 아름다운 불꽃을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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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첨언하고 싶다. . 문화재청은 금년도에 “4·19 혁명 60돌을 맞아 혁명 문화유산’ 7건을 민주화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은 위의 부산일보김주열 열사 사진을 비롯한 4월 학생혁명 관련 기록물들이다. 1960412부산일보에 특종 게재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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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자유

문학칼럼 2020. 7. 31. 19:45 |

김수영과 노고지리와 자유

 

김수영(1921-1968)은 현실 참여 문제를 시와 행동을 통해 실천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전후시단에서 추구했던 시적 작업을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을 통해 정리한 뒤에 자신의 시적 지향에 대한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전후 시단에서 후기 모더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고 활동해 온 그는 바로 그 모더니즘이 빠져든 추상성을 벗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실험성과 서정성의 특이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가 다시 발견한 것은 개인의 삶과 현실 그 자체의 중요성이다.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면서 시여 침을 뱉어라(1968)를 비롯한 일련의 산문으로 자신의 시적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그가 강조한 시의 현실 참여 문제는 자유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국문화의 다양성과 활력을 깨치는 무서운 폭력을 정치적 자유의 결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의 참뜻을 4월 혁명을 통해 현실적으로 체득했던 그는 그 혁명이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짙은 회의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가 내뱉은 야유와 욕설과 악담은 혁명의 좌절을 초래한 소시민들의 소극성을 겨냥한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 풍자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김수영의 반시론(1968)은 이러한 자기 풍자의 극단적인 산문적 진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애를 써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책이 선두가 아니다. 작품이 선두다. 시라는 선취자가 없으면, 그 뒤의 사색의 행렬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고생을 하든지 간에 시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책이 그 뒤의 정리를 하고 나의 시의 위치를 선사해 준다. 정신에 여유가 생기면, 정신이 살이 찌면 목의 심줄에 경화증이 생긴다.

이런 때는 고생이란 고생을 다 써 먹었을 때다 말하자면 수단으로서의 고생을 다 써먹었을 때다. 하는 수 없이 경화증에 걸린 채로 시를 썼다. 배부른 시다. 그것이 라디오라는 작품이었다. 그후 먼지, , 美人등의 3편을 썼는데, 아직도 경화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만성 경화증인 모양이다. 이대로 나가면 부르좌의 손색없는 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전에는 무엇을 쓸 때 옆에서 식구들이 누구든지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신경질을 부렸는데, 요즘은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도 않고, 오히려 훼방을 좀 놀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약이 되고, 작품에 뜻하지 않는 구명대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잡음은 인간적이다. 그것은 너그러운 폭을 준다. 잘못하면 몰살을 당할 우려가 있지만, 잡음에 몰살을 당할 만한 시는 낳지 않아도 후회가 안 될것 같다.

                                                                                                               반시론

반시론에서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시를 진정으로 시답게 생각하는 김수영의 시적 태도이다. 시를 시답게 생각한다는 것은, 시를 시 이상의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시가 포괄할 수 있는 삶의 의미와 그 속성을 시를 떠나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과도 통한다. 그러기에 그는 시라는 것이 말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동시에 온 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시론은 지극히 사적인 자기 고백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속에 시 쓰기의 방법과 그 정신에 대한 분명한 지향을 보여준다. 김수영이 지적하고 있듯이 정신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삶에 대한 안이한 태도와 연결되고, 결국 목의 심줄에 경화증을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그 정신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자극할 수 있는 시정신의 새로움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삶에 길들여지고 습관에 주저앉을 때 인간의 정신활동은 정지되고, 모든 문화는 그 발전과 변화를 중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물질적인 삶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습관성에의 함몰은, 인간의 비인간화를 유도하는 결정적인 요건이 됨은 물론이다. 자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의 상실이 정신의 여유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은, 확실히 현실적인 문학의 풍토에서 다시한번 음미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잡음(雜音)’의 현실과 그 잡음을 감당할 수 있는 시의 의미는 일상의 현실 속에 서 있는 시인의 태도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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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은 자유의 개념을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4.19 학생혁명이 일어난 뒤 동아일보(1960. 7. 7)에 발표된 것으로 시선집 󰡔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에 수록되어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
왜 고독(孤獨)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이 시는 전체 텍스트가 3연으로 구분되어 있다. 하늘 높이 치솟아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의 모습과 함께 자유, 혁명, 고독, 피 등의 관념적 시어가 등장한다. 시의 텍스트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노고지리다. 종다리라고 부르는 이 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그런데 봄철 번식기가 되면 종다리의 수컷은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라서는 공중에서 날개를 심하게 퍼덕이며 소리내어 지저귀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그 울음소리가 멀리까지 퍼진다. 보리가 파랗게 자라나는 봄날 고향 시골에서 많이 들었던 소리다. 암컷을 부르기 위한 소리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보다는 하늘로 올라서 자기 영토를 표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이란다.

시의 1연에서 화자는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 부러워하던 /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종다리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두고 어느 시인이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고 노래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그렇게 말한 시인의 말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는 말을 시적 화자는 수긍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시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의 텍스트의 진술을 놓고 본다면 화자가 수정하고자 하는 것은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는 내용이다. 노고지리가 봄날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모습은 그 자체가 하늘을 제압하는 듯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화자의 생각으로는 노고지리에게 그것이 자유로움이 아니다. 노고지리는 멀리 암컷을 불러야 하고 자기가 터잡고 있는 영역을 지켜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노고지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존을 위해 가장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적 화자가 왜 어느 시인의 말을 수정해야 한다고 진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연은 전체 10행으로 이어져 있는데 시행의 배열 자체가 도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라는 구절은 뒤로 이어지는 시적 진술 내용 전체를 목적어로 삼고 있다. 여기서 자유를 위해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란 자유를 쟁취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투쟁하며 고뇌해본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므로 비상은 정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행동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자유를 위한 적극적인 자기 투여를 비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면 이 시를 발표할 무렵의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는 4월 학생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약 두 달 전도가 지난 뒤에 발표된 것이다. 모두가 4월 혁명의 성공에 고무되어 있던 시기에 시인은 혁명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과 자세를 촉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노고지리가 공중에 떠서 노래하고 있는 것은 자유로움에 대한 찬탄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를 요구하고 지켜 나가기 위한 절규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환희가 아니라 고통이 수반된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은 자유를 거저 얻어낼 수 없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쟁과 피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를 지켜나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이 요청된다. 혁명이 고독하는 말은 혁명에 수반되어야 할 철저한 자기 인식과 올곧은 자세와 연결된다. 혁명을 위해서는 좌우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앞뒤를 고려해서도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어렵다. 철저하게 과거와 단절하고 엄격하게 현실적 관계로부터 탈피해야만 된다. 그러므로 혁명은 외로운 결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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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바람이 흥미롭다. 이 소설은 이미 국내에서 백만 부를 훨씬 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지난 해 영화화 되면서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여성과 세대 문제에 관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이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2018년 말이다. 그런데 지쿠마 서방[筑摩書房]에서 책이 나오자마자 중판이 거듭되었고 3개월 만에 9만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꾸준히 인기를 모으면서 지난 한 해 동안 15만부를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2019년도 일본 문예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이 기간 동안 일본에 번역 소개된 외국문학 작품 가운데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이 일본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향을 두고 일본 현지의 언론과 비평가들도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작가인 조남주 씨를 초청한 강연회가 도쿄에서 열려 상황을 이루었고 번역자인 사이토 마리코 씨가 방송에 출연하여 이 작품을 소개하는 등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현상이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잇달아 2019년도 문예 부문을 총결산하는 시리즈물 기사에서82년생 김지영의 등장을 단연 화제의 중심으로 내세웠고, 이 소설이 한국에서 불러일으켰던 페미니즘 논란에 주목하였다. 특히 한국의 독자들이 보여주었던 사회비판적 목소리와는 달리 일본의 여성 독자들은 소설 속의 여주인공 김지영에게 공감하면서 함께 울었다고 적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 일본에서 이루어진 한국 소설 가운데 화제가 되었던 경우는 최인호, 윤흥길, 조정래 씨 등의 작품이 있다. 그런데 2011년에 번역 출판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당해 연도에 4쇄를 넘기면서 그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출판사 쿠온(Cuon)이 기획 출판하고 있는 새로운 한국의 문학시리즈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하여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원더 보이(김연수), 아오이 가든(편혜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출판으로는 쇼분샤가 기획한 한국문학의 선물이라는 시리즈인데, 한강, 박민규, 황정은, 김금희, 천명관 등의 소설이 번역 출판되고 있다. 출판사 쇼시 칸칸보[書肆侃侃房]에서 기획한 한국 여성문학 시리즈는 김인숙의안녕 엘레나를 시작으로 정유정의7년의 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편혜영의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의 번역 출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출판 경향은 현재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나 TV 드라마의 인기 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소설의 당대적 경향을 곧바로 일본의 독자층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학을 곧바로 수용하여 한국의 독서 시장에 내놓던 현상이 그대로 역전되어 나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한국의 당대 문학의 경향을 일본 출판계가 그대로 공유하게 됨 셈이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문학은 근대문학의 초창기부터 일본문학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신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이인직도 일본 유학을 통해 소설의 대중적 성격과 신문 연재의 묘미를 터득했다. 이광수의 문학시대를 주도했던 청년 이광수가 무정(1917)을 발표했던 것은 와세다 대학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일본 근대문학의 풍경 속에서의 일이었다. 근대적 자유시의 형식을 탐구하였던 김억이나 주요한도 모두 일본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므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라는 거대한 권력 구조 안에서 한국 근대문학은 일본문학의 흐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식민지 시대의 비평가 임화가 주창했던 모방과 이식(移植)’의 문학이라는 명제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지금도 일본 유명 작가들의 소설은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잘 나가는 인기 품목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역량은 사실 한국의 독자들에 의해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평가받았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우리 작가들 가운데 하루키세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붙어 있다.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한국의 대중음악이나 TV드라마가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이른바 한류라는 특이한 문화 현상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한국문학에는 일본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가수 보아도 없고, 일본 여성들이 박수했던 배우 욘사마도 없다. 한국의 근대문학이 성립된 이후 한 세기를 넘어서는 동안 한국문학은 그 존재 의미를 일본의 독자들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의 유명 작가의 대표작들이 우수한 번역자들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지만 일본의 독자들은 한국문학이 제기하는 삶의 문제에 대한 깊이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일본 사회에 던지는 목소리가 앞으로 얼마나 크게 번지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15만 이상의 독자가 이 소설이 던지는 사회문화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이 작가가 제기하는 인간의 삶과 그 존재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에도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랜 동안 일본 문학에 빚져온 역사적 정신적 부채를 벗어나고 있는 이 소설이 일본 출판 시장에서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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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소확행(小確幸)’

 

1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그의 수필에 만들어 썼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널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말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일본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 낸 신조어(新造語)이기 때문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은 1986년 일본 광문사(光文社)에서 발간한 하루키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 (ランゲルハンス午後)>에 처음 등장한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어 말아둔 깨끗한 팬티가 가득 쌍ㅎ여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하나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는 さいけれどもかな(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을 그는 줄여서 소확행[小確幸, しょうかっこう]’이라고도 썼다. 그런데 실제로 이 말을 책의 표지에 노출시켜 광고한 것은 그가 19965월 신조문고(新潮文庫)로 펴낸 수필집 <うずまきのみつけかた>이다. 이 제목을 무어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표지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문구를 줄임말로 쓰지 않고 그대로 표시하기도 했다. 이 수필집은 하루키가 미국 하버드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보스턴 근처의 케임브리지에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체류했던 체험기를 중심으로 하여 적은 것이다. 당시 하루키는 보스턴 마라톤에도 직접 참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도 생활 속에 개인적인 소확행(비록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다소간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주 심한 운동한 후에 찬 맥주를 마시면서 음, 맞아, 이것이다 하고 혼자서 눈을 감고 무심코 중얼거리는 그런 감흥이라든지...’하는 구절이 본문 속에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소확행이라는 말은 벌써 수년전에 타이완에서 굉장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타이완에서 이 말이 유행한 것은 2014년 무렵이다. 타이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기 때문에 하루키가 만들어낸 이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이 말은 타이완에서 먼저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유행어가 되었다. 그러자 책의 이름, 상품의 광고, 심지어는 회사의 이름까지도 소확행을 쓸 정도가 되었다. 급기야 타이완 총통 선거 중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연설도 등장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도록 만드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시대적 요구와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제는 소확행이 아니라 대확행(大確幸)’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을 문학사상사가 일찍 소개한 바 있다. 문학사상사에서 2001년에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은 그 제목 자체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한 바퀴를 돌아 타이완에서 유행하다가 지금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를 대변하는 말처럼 굳어지고 있다. 2018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를 나타내는 말로 이 말을 지목했다고 크게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이 말과 함께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 ‘케렌시아(Querencia, 일상적 삶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 등도 거론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소확행이 여기저기서 화제거리로 등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소비 트렌드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삶의 자세나 가치관을 말해주는 용어로 확대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언론에서조차도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낸 소확행이 한국사회의 현실적 단면을 보여주는 키워드가 되었다고 보도할 정도다. 젊은 세대가 취직하기는 어렵고 돈벌이도 쉽지 않아서 삶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모두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의 만족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설명도 그럴듯하다.

실제로 최근의 한 조사에서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소확행’ ‘워라벨’ ‘욜로등의 신조어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말해주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소확행은 물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인데, ‘워라벨(work)’(life)’조화(balance)’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하여 하나로 줄여놓은 신조어다. ‘욜로라는 말은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따서 줄여놓은 말이다. 현재의 자기 삶에서 느끼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뜻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지장으로 주거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자기만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요즘의 젊은 구직자들이 소확행’(51.8%) ‘워라벨’(30%) ‘욜로’(18.2%) 등의 순으로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패턴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근래 흔히 삼포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한국 젊은 세대들이 성취가 불확실한 취업, 결혼, 육아, 내 집 마련 같은 큰 행복을 좇기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에서 거창한 목표나 꿈을 접어버리고,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이 강해졌다는 말이다.

 

2

 

소확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무리카미 하루키는 전 세계에 수백만의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명성을 얻게 된 과정은 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때만 해도 일본의 평단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아주 인색했다. 일본 문단은 하루키의 소설을 그저 한때 대중 독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통속적인 소설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문학사상사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에 대해 일본 출판계도 의아스러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를 비롯하여 <해변의 카프가> <태엽 감는 새> <댄스 댄스 댄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고 그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때마침 한국 문단은 1980년대까지 이어왔던 역사와 현실을 중시하는 소설의 이른바 거대담론이 정치 사회적 민주화의 확립 과정 속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젊은 계층은 개인적 삶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통해 개인적 삶의 질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만나게 새로운 소설적 세계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한국의 소설에서 흔히 만났던 인물의 사회 계급적 성격을 규정하던 여러 가지 징표들이 모두 지워져 있다. 오히려 일상적 삶의 현실 자체가 인물의 성격을 해체한다. 그러므로 소설 속의 인물은 그 개인적 존재와 삶의 현실 사이에 애매한 긴장이 가로놓여 있지만 대체로 그 사회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예컨대 <상실의 시대>에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사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라는 주인공이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거의 20년이 지나버린 19살 때의 나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첫사랑의 아득한 기억과 그 기억 속에서 끌어올려지는 것들은 사랑의 아픈 실패와 친구의 자살 등으로 회색빛으로 바뀌어버린 젊음 시절의 풍경이다. 이 소설에서 감촉되는 도시적 감각,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적 고뇌, 청춘의 방황과 아픈 사랑 등에는 역사라든지 현실이라든지 하는 시대의식 자체가 담겨져 있지 않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파편화된 개인들이며 이들이 겪는 삶의 허무감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세계문학의 무대로 끌어올린 <태엽 감는 새>는 직장을 그만 둔 사내를 화자로 등장시켜 놓고 있다. 그는 도쿄 교외에 있는 집에서 아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하루 종일 혼자 뒹군다. 1930년 이상의 소설 <날개>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부조리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주인공의 삶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의 삶의 사회적 조건을 어느 정도 규제해온 가정이라는 사회단위가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직장을 벗어나고 가정으로부터 유리됨으로써 기성적 질서로부터 해방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적인 인물 설정은 소설적 서술의 기법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우선 행위의 인과적 논리가 철저하게 거부되고 있으며, 구성의 원리라고 하는 고전적인 소설적 규범도 무너지고 있다. 상황의 끊임없는 변화와 그 내밀성을 천착하기 위해 이야기는 해체되고, 잡다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임의적인 환상들이 닥치는 대로 그려진다. 소설속의 이야기는 모두 단편적인 것이 되고 행위는 연속성을 벗어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보여주는 이러한 새로운 기법은 경험적 현실 세계의 다층성과 가변성, 그리고 그 불연속적인 자의성을 드러내기 위한 고안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력의 전환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운동을 추동했던 거대서사의 소멸이라는 소설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크게 충격을 던져준다. 하루키 열풍이 일어나게 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소설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주제의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동안 이미 독자들은 하루키의 소설의 새로운 상상력과 그 기법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이후 지난 30년 동안 2, 3년에 한두 편씩 화제의 작품들을 줄곧 내놓았다. 소설가로서 끈질기게 글을 쓰는 일로서 자기 존재를 스스로 입증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다양한 취미활동도 꾸준히 실천한다. 직업으로서의 작가라는 위치를 잠시도 잊지 않고 그는 자신을 조련하고 있다. 자신의 체력을 위한 스포츠 활동, 세계의 여러 지역에의 여행과 그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와 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는 적당하게 어물적 넘기는 법이 없이 언제나 전문가답게 자신을 보여준다. 이 같은 소설가로서의 프로 근성과 끈질긴 탐구력은 세계의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점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에서는 그가 동원하고 있는 모든 소재와 대상이 풍부한 이야기거리로 살아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 전통 속에서 소설의 양식이 추구해온 서사의 문법을 자신의 방식으로 고쳐놓고 있다. 그는 과거의 소설이 집착했던 방식대로 인물을 통한 사회 역사적 특수성의 발견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본인이라고 성격지워 말하기 어려운 특이한 개성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비록 일본인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구태여 그들에게 어떤 지역성을 언급해야 한다면 세계인이라는 명명이 오히려 더 설득적일 수가 있다. 그들의 삶의 태도나 사고방식은 뉴욕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와도 비슷하고 파리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젊은이와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한 젊은이들은 서울의 홍대 앞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개성적이지 않은 특이한 개성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에서 창조해낸 성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문(美文)의 스타일리스트는 아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하나의 의미를 지탱하기 위해서 그가 발굴하고 있는 흥미로운 소재뿐만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말해야 할 것인가를 고심한다. 화제작이었던 <해변의 카프카>는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듯이 자기 소재를 재해석하여 배치하고 있다. 이 소설의 이야기에서 갈피를 잡아내기 어려운 사건들의 중첩과 충돌,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상실한 채 떠도는 인간의 삶의 도정은 궁극적으로 삶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허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질문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어떻게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는 그 소설적 미학을 논할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심하고 있는 어떻게의 문제는 대상을 파악하고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의 문제는 일상의 소재를 소설이라는 예술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방법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묘사의 매력보다는 서술의 힘에 의존한다. 일본 소설이 하나의 전통처럼 내세웠던 섬세하고도 예리한 언어 감각과 문체를 하루키는 별로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쉽고 활달하게 서사를 전개시키고 이야기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어가는 서술에 힘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소설 속의 이야기는 특정의 장면이나 특정의 사물에 묘사가 집중되어 이야기의 진행과 흐름이 멎어버리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특정 대상에 대한 지배적 인상의 묘사적 표현보다는 다양한 시각의 서술이 이어진다. 결국 소설의 이야기는 어떤 경우 빠르게 어떤 경우는 느리게 진행되면서도 그 장면의 전환을 쉽게 이루어나간다. 이 평이한 문체를 통한 서술의 힘을 바탕으로 하루키는 그가 선택한 소재를 중심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는 이야기의 힘을 따라가는 이야기꾼이지 언어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자랑하는 스타일리스트는 분명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특징이 오늘의 세계문학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매료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전환의 물결 속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지역과 종족과 언어의 경계를 뛰어 넘어서 소설이라는 양식이 거두어들이고 있는 특이한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이 한국 소설에도 기법과 정신의 전환을 새롭게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과장된 설명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이 하루키 소설에 빚지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대 한국 소설 독자들을 매료시키면서 세계문학의 무대로 도약했으며 한국의 소설도 하루키를 만나면서부터 소설의 방법 자체에 대한 반성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3

 

무리카미 하루키는 일본 작가이지만 이제 세계적 지성으로 그 목소리를 누구나 경청한다. 그가 두어 해 전에 동아시아의 문화적 연대를 강조하면서 일본과 중국을 둘러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 한국과 일본의 독도 문제로 빚어진 분쟁을 두고 했던 말도 다시 생각난다. 그는 영토갈등을 둘러싼 갈등과 그 광적인 반응이 마치 술 취한 사람의 행동을 닮았다.’ 라고 꼬집으면서 지성의 부재를 논박했다. 하루키는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가 문화적 등가교환임을 천명하면서 이러한 문화 교류야말로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시대의 양심으로 세계적 지성으로 존경받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정치적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예지(叡智)와 통찰력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낸 소확행이라는 말이 타이완에서 유행어가 되고 한국의 젊은이들의 삶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성인으로서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세계적 작가로서의 놀라운 상상력, 인간과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 등으로 본다면 이런 경향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이 삶에서 추구해야 하나의 목표를 말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소확행이라는 말 자체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업주의적으로 새로운 의미까지 덧붙여져 부추겨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루키는 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작은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리며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니스 코트에서 신이 나게 테니스를 치고 나서 차디찬 맥주를 들이키는 기분이라든지, 샤워를 마치고 포송한 새 내의를 갈아입으면서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라든지, 아파트 정원을 걷다가 보도블럭 사이에서 키 작은 노란 민들레꽃이 막 피어난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경이로움 같은 것은 우리가 그 가치를 놓치고 있던 감정들이다.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소확행도 바로 그런 것들이다. 갓 구워낸 식빵을 손으로 찢어먹을 때 느끼는 신선하고도 고소한 맛이라든지, 서랍을 열었을 때 새 팬티가 착착 잘 접혀서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그런 기분을 그는 소확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나 기쁨의 감정은 일부러 그런 것을 추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즐기는 그런 기분이다. 요즘의 젊은 세대가 삶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고 소확행에 집착한다거나 자기들이 이루어낼 수 있는 작은 성취에 민족하면서 살고 있다는 식의 해석까지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은 오히려 하루키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을 생각하면서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들이 겪는 힘든 삶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아무 대책도 없이 마치 무능력자처럼 사회의 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매일 같이 귀가 아프도록 들으면서도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과제이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는 2차 회담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정치인들은 여전히 입 바른 소리만 뱉어놓으면서 파당적인 이익만 따지고 말로만 청년 일자리 수만 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런 속에서 어두운 현실에 좌절하면서 무기력에 빠져버린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삼포세대오포세대하면서 자기 비하에 빠져들어 있다. 이 환멸의 시대를 스스로 견디어 내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딱하다. 경제가 위기라든지 일자리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해에 수십만의 대졸 학력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제 와서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라고 훈수하는 것은 그들을 그렇게 키워낸 사회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미래의 한국 사회를 새롭게 이끌어갈 이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기성세대의 시대적 임무에 대한 거역이다. 젊은이들이 삶의 꿈을 상실한 채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라고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비하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좋든 싫든 우리 사회의 미래는 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가 일어설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미래의 주역들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고 자기 삶에 대한 권한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어떻게 사회를 떠맡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 있는 소확행은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에서 일상적 현실의 삶 가운데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잘한 행복감이다. 우리 젊은 세대가 지금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일상의 소소한 작은 행복이 아니다. 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생존 자체를 위기로 체감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생활 태도라든지 소비 트렌드라는 것을 소확행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 본의와는 너무 다르고 별로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한 끼의 식사조차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인 이들에게 갓 구워낸 식빵의 고소하고도 신선한 맛을 느끼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루 종일 고시촌 구석방에 틀어박혀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는 젊은이가 서랍 속에 가득 새 팬티를 가지런히 개어 넣어두고 그걸 꺼내어 입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한가롭게 테니스를 즐기고 기분 좋게 맥주를 들이키며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겠는가?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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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찾은 김기림의 시 5

 

김기림이 해방 직후에 발표한 씨 5편을 발굴하여 공개한다. 기존의 자료에 실려 있지 않은 작품들이다. 필자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김기림전집 전4](민음사, 2019년 출간 예정)의 새로운 출간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 찾은 작품들이다.

김기림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에는 고향 근처인 함경북도 경성 소재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영어를 가르쳤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서는 임화, 이태준, 김남천, 이원조 등이 주도했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가담하여 새로운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2월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흡수하여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면서 좌익문단의 대표 조직으로 등장했다. 김기림은 이 단체의 중앙집행위원 및 시부 위원장이 되었고,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지부 위원장을 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해 9월 경성대학(국립 서울대학교 전신)에서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1948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까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던 상당수의 문인들이 활동무대를 북한의 평양으로 옮기면서 이른바 월북 문인이 되었지만 김기림은 월북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문학가동맹 시대의 활동을 청산하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사상적 전향을 선언한 후 한국문학가협회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정치보위부원에 의해 연행당한 후 9. 28 수복 직전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그의 행적은 그 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1988년 월북문인 해금 조치 이후 문학사에서 그의 문학적 위상이 주목되면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 발굴한 작품들은 모두 해방 공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김기림이 서 있던 문단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울어라 인경아는 해방 직후 창간된 신조선보(新朝鮮報)(1945. 12. 27)발표한 작품이다. 1945해방을 맞은 을유년 제야에 종로 인경을 울릴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들의 청원이 잇달았다. 미 군정청에서는 결국 이 청원을 받아들여 그 해 1231일 밤에 인경을 울리도록 허가하였다. 이 시는 그 소식을 듣고 쓴 작품으로 노래의 가사 형태로 만들어졌다. 해방의 종소리에 대한 뜨거운 감회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한성일보(漢城日報)(1946. 3. 2)에 발표한 것으로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3.1절의 뜨거운 감회를 노래한 작품이다. 팔월(八月) 데모행렬(行列)에 부치는 노래현대일보(現代日報)(1946. 8. 16)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 뒤 제목을 바람에 불리는 수천 기빨은이라고 바꾸고 일부 구절을 고쳐서 시집 [새노래](1948)에 수록했다. 원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여기에 소개한다. 백만(百萬)의 편을 잃고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47. 8. 7)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시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19477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에게 저격을 당해 서거하자 이를 추모하는 뜻으로 지은 작품이다. 여운형 선생은 조선인민당의 당수로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된 민족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통일(統一)에 부침신민일보(新民日報)(1948. 4. 18)에 발표한 작품이다. 남북한이 각각 서로 다른 이념적 지표를 내세우고 독자적인 정부를 만들고자 할 때 민족 통일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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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인경아

1

문 열어주어라

인경이 울겠단다

벙어리사리 마흔 해

인제 사내나 다 목 노아 울라

(후렴)

울어라 인경아

네거리의 황혼을 찌르며

네가 울면 나도 울마

삼천만(三千萬)이 다 울자

2

창살을 뜨더 줘라

인경이 울겠단다

이 땅에 고인 피 상채기

고이 씨스며 쓰다듬으며

3

뭉치어라 엉키라고

인경이 울겠단다

놈들의 칼과 채찍

함께 겪은 마흔 해 잊지 말라고

4

새나라 오신다고

소리쳐 울겠단다

겹겹이 감긴 어둠

떨어버리고 몸부리치며

                             [신조선보(新朝鮮報), 1945. 12. 27]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

해 없는 나라 굿게 닷힌 겨울의 문() 어두운 육지(陸地)에 펴지는 빙하(氷河)에 깔려 다 식어가는 역사(歷史)의 하상(河上)에 그러허나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 구름 사이 새어 흐르는 간열힌 햇볏에도 생명(生命)과 샘과 싹은 화산(火山)처럼 솟아젓다

누가 막으랴 철이 돌아와 가꾸는 이 없어도 산()과 들 욱어저 피어 눈이 모자라는 진달래꼿을-

민족(民族)의 기억(記憶) 속에 높이 세운 기념비(記念碑) 우리들의 삼월(三月)에 해마다 감기우는 젊은이 마음 또한 꼿다발이니 푸른 하늘 우러러 피어오르는 지튼 피빗은 자유(自由)와 아름다움 죽음보다 사랑하야 열열함이라.

늙은이는 이윽고 모든 것 무덤에 파뭇어 잇어도 버리련만 이 땅이 널린 곳 해마다 뒤니어 피어나는 젊은 싹 녹여버리는 식은 하늘과 소낙비. 세계(世界)가 모이는 날 나라 없는 머리 추어들 곳 없어 일허버린 조국(祖國)은 목숨보다 비싸더라. 어버이와 자손(子孫)들 드되어 일어낫으니 조여드는 독사(毒蛇)의 허리 비틀어 뻐기며 라오곤보다 사나웁게 소리첫드라.

조상(祖上)적 남기신 여러 번 빗나는 사연과 용맹한 기록 가지가지 지니지 못하는 못난 자손(子孫)들 미운 굴욕(屈辱)의 역사(歷史) 지워버리려 상처 바든 민족(民族)의 노염 불길처럼 국토(國土)에 덥여

 

우리들의 삼월(三月)

하늘하늘 뻣히는

세기의 봉수불이었다.

창칼에 땅이 찍겨 다시 어두운 강산(江山)이 꼿가튼 피와 눈물에 젓어 감추어진 민족(民族)의 마음 하늘가에 이즈러진 무지개 걸리어 닥처오는 시간의 저편에 새나라 찻어 민족(民族)의 방랑(放浪)은 시작하였었다. 구름과 눈물 아롱져 빗나는 달 삼월(三月)을 안고 .....

젊은 삼월(三月) 아네모네곱게 타는 달은 우리들의 자랑 무지(無知)한 세기(世紀)의 암벽(岩壁)에 피로 쓴 아름다운 항의(抗議).

흐린 하늘과 어즈러운 밤과 사막(砂漠)에 울리던 태양(太陽)의 예언자(豫言者) 일어나라...... 웨치는 목쉰 소리었다.

인제 삼월(三月)은 꺼질 줄 모르는 횃불. 우리들의 압날 곤()하고 괴로운 먼 길 낙심(落心)과 회의(懷疑) 비겁(卑怯)의 그림자 일일이 살워버리는 거룩한 불길이어라.

                                                                                           [한성일보(漢城日報), 1946. 3. 2]

 

팔월(八月) 데모 행렬(行列)에 부치는 노래

 

바람에 떨리는 수천 기빨은

창공()에 쏘는 인민(人民)의 가지가지 호소(呼訴).

 

소리소리 웨치는 노래와 환호(歡呼)

구름에 사모치는 백성들의 횃불

타다타다 빛도 없는 팔월(八月)의 횃불

 

아스팔트 뒤흔들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발자곡의 조수는

어둔 밤 설레는 파도소리냐.

닥아오는 새날의 발울림이냐.

                                                         [현대일보(現代日報), 1946. 8. 16]

 

백만(百萬)의 편을 잃고

 

당신은 자동차(自動車)를 싫여하섯다.

자동차(自動車)보다는 뻐쓰를

뻐쓰보다는 몬지 낀 길바닥을 것기를 좋아하섯다.

거기 띠끌을 쓰고가는 우리들 곁에 늘 오시고 싶은 때문이었다.

 

당신의 곁에는 총()칼 찬 친위대(親衛隊)도 아모것도 없었다.

그런 것은 비겁(卑怯)한 팟쇼의 대장(大將)들의 짓이라 하섯다.

백성에게 자유(自由)가 없고 억울한 죽엄이 그들 앞에 나날이 딩굴 적에

호올로 안전(安全)한 곳에 당신은 도시 앉었을 수가 없었다.

쓸어질지라도 다만 괴로운 인민(人民)의 속에 있기가 소원이섯다.

 

당신은 언제고 젊은이들의 벗

가난한 이웃과 불상한 사람들의 친구

아이들과 공차고 달리기 좋아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이었다.

그러기에 당신과는 참말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얘기할 수 있었고

마음 놓고 정권(政權)도 미끼리라 했다.

 

언제고 군중(群衆)의 환호(歡呼) 속에 나타나던 당신

성낸 사자(獅子)처럼 단상(壇上)에서 노호(怒號)하실 적에도

우리는 서산(西山)을 처다보며 뻑뻑 담배를 빨 수가 있었다.

야단맛고 벌벌 떠는 것은 팟쇼의 대장(大將)들과 인민(人民)의 적()들이고

우리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시달리는 백성을 등에 돌리고 반동(反動) 앞에

당신이 가로막아 섰을 때

우리는 참말이지 신이 났었다.

그러기에 당신의 일홈과 함께 인민(人民)이 부르는 만세(萬歲) 소리는

가슴과 뱃장에서 아니 발톱에서 머리끝까지 울려나왔다.

당신은 벌써 당신 자신(自身)이 아니오

모든 인민(人民)의 당신이었다.

 

뚫어진 차()에 실려 소리없이 종로(鐘路)로 도라오실 적에

골목의 과일장수도 신기우려도 어멈도 여점원(女店員)

기구와 저울과 수판을 내던지고 엉엉 울었다.

기자(記者)는 연필을 팽개첫으며 늙은이와 소년(少年)

벽보(壁報) 앞에 그만 줏앉었다.

그들은 그들의 겻테서 백만(百萬)의 편을 한꺼번에 잃었던 것이다.

 

지금 전에 없이 사나운 반동(反動)의 회오리 속에서

아우성치는 인민(人民)의 곁에 아모리 도라보아야 당신이 안 계시다.

오늘은 웅변(雄辯) 대신에 무거운 침묵(沈默)으로써 가르키시는

승리(勝利)로 가는 싸움의 길이 만() 사람의 눈앞에 눈물에 어려 빛날 뿐

피로써 당신이 헤치신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의 길이

횃불처럼 별처럼 떨리고 있을 뿐.

-몽양(夢陽) 선생(先生)을 일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1947. 8. 7]

 

통일(統一)에 부침

 

우리는 본시 하나이었다.

뼈저린 챗직 아래서도 끌어안고 견디던 하나이었다.

소리소리 지르면 제절로 반항(反抗)의 합창(合唱)이던

눈물어린 망향(望鄕)의 쓴 잔도 함께 난운

! 둘을 모르는 하나이었다.

팃기 없는 하늘 아래

문의 놓은 기와와 그릇과 비단과 종종한 말

모두 아름다운 것

죽어지라 사랑하며 살아온 내력(來歷)도 하나.

 

인제 온 백성을 들어 구임(口臨) 문제(問題)의 막다른 골로 몰아넣어

형제(兄弟) 있는 곳과 소식 또 오래인 꿈

돌볼 새 없이 만드는

이 놀라운 실리주의(實利主義)의 천재(天才)에 우리 모두 항거(抗拒)하리라.

짓밟힌 아름다운 것 함께 뫃여 소곤소곤 살아갈 길 지키기 위하여

 

이방(異邦) 친구들에게 일르노니

한데 뭉친 민중(民衆)의 민주주의(民主主義) 대신에

쪼각난 폭군(暴君)의 민주주의(民主主義)

그대들에게 우리 언제 부탁한 기억(記憶)이 없다.

사월(四月)달 진달레 뿌리 벋어

말래도 굳이 벋어

남북(南北)으로 만발(滿發)한 산맥(山脈)과 핏줄

뚜드러져 굼뚤거리는 것

뉘 감히 끊을 것이냐?

 

흐르는 강물도 철로(鐵路)도 전선(電線)도 변하는 계절(季節)

오로지 한 소리 아래 움지기고 시퍼

모든 시내 강물 바다로 뫃이듯

진달레 개나리 욱어져 피는 한 보금자리로

우리 모두 한데 엉키어 논이지 말자.

 

틀어쥔 손과 손 악수(握手)가 아니라

()과 북()의 자국도 없는 용접(鎔接)

모든 열역학(熱力學)의 법칙(法則)을 기우려

거만한 이방(異邦) 사람들의 눈앞에서

보아지라 우리 모두 감아매리.

                                                     [신민일보(新民日報) 194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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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다(Leda)와 백조

문학칼럼 2018. 11. 20. 13:38 |

레다(Leda)와 백조

  

 

폼페이에서 발견한 벽화

이태리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는 화산재 아래 묻혀 있던 곳이다. 2천년 전인 서기 79폼페이에서  23 km 떨어진 베수비오 산(Mount Vesuvius) 대폭발을 일으켰다. 베수비오 산은 오랜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이 사화산처럼 서 있던 산이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폼어나왔다. 그리고 그 화산재가 그대로 인근의 도시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는  7m 달하는 화산재에 덮인 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16세기 말에 그 존재가 발견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발굴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 폼베이에서 고대 로마 시대의 관능적인 벽화가 발견돼 고고학계가 탄성을 터뜨렸다폼페이 유적 지구의 구조 보강 작업 도중 백조의 형상을 한 주피터 신이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임신시키는 장면을 생생히 묘사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지의 한 저택의 침실 벽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약 2천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감과 레다 여왕의 관능적인 표정이 살아있어 발견자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조로 변신한 주피터 신이 레다를 임신시킨 이야기는 당시 폼페이에서 주택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희랍 신화 속의 레다와 백조

 

희랍의 신화 가운데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Leda)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레다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 디오스쿠리(Dioscuri)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왕비 레다를 약칭하여 디오스(Dios)’라고 한다. 디오스의 여신이라고도 부른다. 레다는 원래 스파르타 왕 틴다리오스(Tyndareos)의 왕비이며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에우로타스(Eurotas) 강에 나아가 자주 목욕을 한다. 올림포스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던 제우스가 이 아름다운 미녀의 자태를 보고 마음을 태운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함부로 하기는 어렵다. 제우스는 때를 기다린다. 마침 레다가 작은 연못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본 제우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술수를 부린다. 레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곁으로 갑자기 하늘에서 백조 한마리가 날아든다. 그리고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백조를 잡아먹기 위해 주위를 맴돈다. 백조는 독수리를 피하기 위해 허둥댄다. 레다는 백조를 가엾게 여겨 자기 품에 꼭 안아 숨긴다. 레다가 백조를 품은 사이 백조는 강폭한 사내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레다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백조는 제우스의 변신이고, 독수리로 가장한 것은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다. 아들 헤르메스가 아버지의 욕심을 돕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제우스와 일을 치른 그날 밤, 레다는 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와 잠자리를 갖은 후에 임신한다. 얼마 뒤에 그녀는 사람 대신 알을 두 개 낳는다. 그 두 개의 알에서 각각 남녀 1명씩 2쌍의 쌍둥이가 태어난다. 한쪽은 제우스의 자식이요, 다른 한쪽은 인간 틴다리오스의 자식이다. 제우스의 알에서 태어난 자식은 헬레네와 오빠인 폴룩스(폴리데우케스). 틴다레오스의 알에서 태어난 자식은 클리템네스트라와 오빠 카스토르이다. 이 가운데 남자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디오스쿠리즉 제우스의 아들들이라고 부른다.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 신를 끌어안고 있는 왕비 레다의 모습은 수많은 미술품으로 만들어져 전해온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레다와 백조>는 그 가운데에서도 유명한데, 이번에 발견된 벽화와 그 모티프가 아주 유사하다.

 

시인 예이츠의 <레다와 백조>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illiam B. Yeats)는 그의 시 <레다와 백조 Leda and the swan>에서 제우스 신과 왕비 레다의 관계를 말해주는 그리스 신화를 시적으로 변용하여 이렇게 그려낸다.

 

갑자기 덤벼들어; 백조는 큰 두 날개를 조용히 치며

비틀거리는 여인 위에 덮친다, 여인의 허벅다리는

새의 어둔 깃가지에 쓰다듬기고, 목은 주둥이에 잡혀,

어찌할 수 없이 여인의 가슴은 백조의 가슴에 껴안긴다.

 

공포에 사로잡혀 얼빠진 손가락이 어떻게 맥 풀린 허벅다리에서

깃에 싸인 그 영광을 밀어젖힐 수 있겠는가.

백색의 급습(急襲)에 내맡긴 육체가 그 품안에서

이상히 가슴 울렁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후략)

 

A sudden blow: the great wings beating still

Above the staggering girl, her thighs caressed

By the dark webs, her nape caught in his bill,

He holds her helpless breast upon his breast.

 

How can those terrified vague fingers push

The feathered glory from her loosening thighs?

And how can body, laid in that white rush,

But feel the strange heart beating where it lies?

 

이 시를 소개하고 있는 한 영문학자(이창배, 20세기 영미시의 이해, 24-26)의 해설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레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레다를 범한다. 이것은 신이 인간의 세계로 하강하여 인간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신인교섭(神人交涉)’의 모티프로 고정되어 이야기 속에 전해지게 된다. 예이츠는 이 신화의 한 장면을 그의 시 속에 끌어들여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그리스의 문명이라는 것이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신과 왕비 레다의 교섭의 장면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 신과 인간의 육체적 교섭은 그리스도의 수태고지(受胎告知)와 맞먹는 중대한 역사적 순간이다. 예이츠가 이 극적인 장면을 시적 상상력으로 포착하여 인간의 문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담아낸 셈이다.

 

이상의 소설 동해(童骸)속의 디오스의 여신

 

리 문학 가운데에는 이상(李箱)의 소설 동해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디오스의 여신인 레다의 이야기가 패러디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 장면은 눈이 밝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찾아내기 어렵다. 소설 동해의 이야기는 요즘의 풍속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남녀관계를 그려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라는 인물은 작가 이상 자신으로 위장하면서 일종의 메타픽션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어느 날 오후 혼자 살고 있는 단한칸 방으로 이라는 여인이 가방을 싸들고 찾아온다. ‘는 이 여인의 남편인 이라는 사내와 서로 알고 지내는 친구이다. ‘이 남편과 사소한 다툼 끝에 집을 뛰쳐나와서는 남편 친구인 를 찾아온 것이다. ‘과는 못 살겠다면서 에게 한번 같이 살아보잔다. 이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을 내치지 못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이튿날 그녀를 데리고 에게 찾아간다. ‘을 나무라면서 그 아내인 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에 과의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벌어진다. 이때 이 자신을 디오스의 여신이라면서 두 사내의 언쟁 사이에 끼어든다.

지이가 디오스의 여신(女神)입니다. 둘이 어디 모가질 한번 바꿔 붙여 보시지요. 안 되지요? 그러니 그만들 두시란 말입니다. 윤한테 내어준 육체는 거기 해당한 정조(貞操)가 법률처럼 붙어 갔던 거구요, 또 지이가 어저께 결혼했다구 여기두 여기 해당한 정조가 따라왔으니까 뽐낼 것두 없능거구, 질투헐 것두 없능거구, 그러지 말구 겉은 선수끼리 악수나 허시지요, ?”

윤과 나는 악수하지 않았다. 악수 이상의 통봉(痛棒)이 윤은 몰라도 적어도 내 위에는 내려앉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여기 앉았다가 밴댕이처럼 납작해질 징조가 아닌가.

 

여기서 이 언급하고 있는 디오스의 여신은 물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말한다. 동해의 여주인공 은 하룻밤 사이에 남편 를 번갈아가며 관계한 셈이다. 그녀는 신화 속의 디오스 여신, 즉 스파르타 왕비 레다가 백조로 변신했던 제우스와 관계를 맺고 다시 그날 밤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와 관계했던 사실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꾸어 패러디한다. ‘은 자신을 디오스의 여신이라고 자칭하면서 의 언쟁을 말린다. 이 대목이야말로 동해의 텍스트에서 여주인공의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은 자신의 얼굴에 디오스의 여신을 덧씌우고는 두 사내 사이를 오가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조를 내세워 이들을 납득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디오스의 여신이라면 도대체 누가 제우스이고 누가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일 수 있겠는가?

소설 동해는 여주인공 의 일탈을 통해 여성에게 요구해온 정조(貞操)의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것은 도덕이라든지 윤리적 가치라든지 하는 것이 모두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위한 고도의 수사적 장치를 읽어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소설의 제목 자체도 처녀와 헌 게집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동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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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 최고의 비평가 김윤식 교수

 

어느 시대의 문학에서도 최고의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김윤식 교수의 경우에 그렇다. 김윤식 교수 이전에는 김 교수와 같은 비평가가 우리 문단에 없었는데, 김 교수 이후에도 그와 같은 비평 작업을 감당할 만한 비평가가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독보적인 활동을 보여 온 김윤식 교수에게 우리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전혀 아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김윤식 교수가 평생을 두고 쌓아온 2백여 권에 이르는 엄청난 저술과 그 비평적 성과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김윤식 교수는 비평이란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자신의 비평 작업은 발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단한 비유적인 진술은 김 교수 비평의 성격을 말해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문단의 한복판에 발을 내디디고 든든하게 자신의 거점을 정한 뒤, 그 역사적 현장성을 파악하면서 작품을 논한다는 자부심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런 실증성과 시대성의 인식이야말로 김 교수가 남긴 모든 비평 작업에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방법론의 기반이기도 하다.

  비평이란 한 시대의 문학이 그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에 긴요하게 요구된다.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적 방법을 통해 이미 이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의 발로 쓰는 비평이란 논리적 형식보다는 실증적인 내용에 더욱 관심을 둔다. 사변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것에,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앞세운다. ‘발로 쓰는 비평은 문단의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비곡절을 안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을 그 대상이 되는 문학 작품과 나란히 내세우고자 한다. 이 특이한 작품과의 맞서기를 통해 그 문학을 만들어낸 수많은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작가와 더불어 삶과 문학을 생각하며 현실에 골몰한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이 강조된다.

  김윤식 교수는 평생을 우리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비평이라는 것이 그 대상으로서의 작품이 없으면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평 작업과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모두 다시 작품으로 떳떳이 돌아오고자 하는 목표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비평의 실천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의 비평은 그 방법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작품의 의미에 활기를 불러일으켜 주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김윤식 교수는 문단비평과 강단비평의 간격을 없애버린 비평가다. 김 교수는 당대 문학의 과제를 전체적인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문학사적 사실이 지니는 문제성을 당대의 문학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김 교수가 자신의 수많은 저서와 평문들에서 끈질기게 다뤄온 것은 우리 문학에서 근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김 교수가 먼저 선택한 것이 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역사적 체계화 작업이다. 김 교수가 자료를 조사 정리하고 사()적인 맥락을 세워나가면서 체계화한 한국 근대문학 비평은 우리 문학이 추구해온 문학적 근대성의 자기규정과 그 논리에 대한 해석이었음은 물론이다.

  김 교수의 비평사 연구는 문학을 다른 어떤 사상으로 대치시켜 놓기 위한 작업은 결코 아니다. 그는 문학의 위상을 그 사회 문화적 논리의 그물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고자 한다. 김 교수의 대표적 업적으로 손꼽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바로 이러한 작업의 첫 성과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이 작업에 뒤이어 한국의 근대비평가들을 자신이 엮은 비평사의 틀 속으로 담아나간다. 방대한 규모의 비평적 전기로 그 문학적 삶의 비극성을 재구(再構)해낸 임화 연구를 비롯해 박영희, 백철, 이헌구, 최재서 등에 대한 연구에서 김 교수가 비평사의 그물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윤식 교수의 소설 읽기는 작가와 비평가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맞서는 작업에 해당한다. 이 맞서기 작업의 첫 대상이 이광수였음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라는 저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맞서기 작업은 승부를 결정짓는 싸움은 아니다. 서투른 독자들은 김 교수에 의한 이광수 극복을 운위(云謂)할지도 모르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이광수를 오늘의 현실 속에 다시 세우고 그와 함께 문학과 역사를 논하며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소설을 예술이라고 믿었던 김동인의 오만한 모습도 김 교수의 어깨너머에 보이고, 관점의 중립을 소설적 미덕으로 자랑했던 염상섭도 김 교수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천재 이상도 김 교수의 왼쪽에서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김 교수와 동시대를 살아온 최인훈도, 이청준도, 박완서도 그 뒤에 둘러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모든 작가에게 김 교수는 집요하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과 소설적 아이러니의 문제를 다시 묻고 대답을 재촉한다.

  이 쉼 없는 대화와 맞서기를 통해 김 교수는 작가를 일떠세우고 딴전부리는 작가를 채근하며 그들과 함께 문학과 역사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통해서 김윤식 교수가 극복하고자 한 것은 소설의 형식에 미학적 요건을 부여해온 많은 이론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근대소설의 운명을 논하기 위해 김 교수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을 극복해야 했고 루시아 골드만의 숨은 신을 우리 소설 속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세상을 떠나셨다. 김 교수의 비평 작업은 언제나 삶과 예술의 총체적 의미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은 후학들에게 우리 문학사 전체의 무게만큼이나 벅차다. 하지만 이 짐을 감당해야 할 후학들은 사실 행복하다. 아무런 짐의 무게도 가늠할 수 없던 때에 비평의 논리와 방법에 홀로 매달려야 했던 김 교수의 힘든 노력에 비하면, 감당해야 할 몫을 그 무게만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김윤식 교수님! 이제 펜을 놓으시고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교수신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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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宮中) 무희(舞姬) 리진

 

지난 8월 초에 신경숙의 장편소설 󰡔리진 󰡕(2007)이 앤턴 허(Anton Hur)의 번역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아마존에서는 이미 이 책의 보급판을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중요 서점에도 이 책이 전시되고 있다. 책의 제목은 궁중 무희(The Court Dancer)’로 바뀌었다. 소설 󰡔리진 󰡕은 한국에서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는 원제명이 푸른 눈물이었다. 신문 연재본과 한국어 단행본 그리고 영역본이 각각 그 제목을 바꾸어 달고 나온 셈이다

 

조선 말엽 궁중의 무희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리진은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국내의 문헌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백년전 프랑스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조선에 온 프랑스 외교관과 궁중 무희 리진에 대한 사연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이 외교관을 따라 파리로 가서 우울증에 걸려 지냈다는 간단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경숙은 리진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살려낸다. 주인공 리진은 기울어가는 왕조의 마지막 명운을 붙잡고 섰던 왕비의 총애 속에서 궁중의 무희로 자라났다. 조선의 궁중에서 나비 같이 춤을 추던 이 아릿다운 여인은 낯선 프랑스로 건너가 물빛 드레스를 입고 파리의 거리를 거닐었다. 신경숙은 이 여인에게 모국어의 영역을 벗어나 프랑스어를 습득하게 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모파상의 작품을 낭독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는 이 새로운 삶이 환희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무너지고 있는 조선 왕조와 그 왕조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에 담고 있던 왕비만이 걱정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허용된 각별한 운명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알아낸 역사를 살아야 했고, 그 자신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 자신만의 기억 속에 사랑을 담았다.

모두가 망각해버린 이 여인의 삶을 통해 작가 신경숙이 말하고자 한 것은 패망해 가는 왕조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리진은 우여곡절 끝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서구의 근대 문물을 몸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참극의 주인공이 된 왕비(명성황후)의 죽음의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알리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에서 리진은 참혹하게 죽어갔다. 그녀가 서양을 배우기 위해 터득했던 프랑스어를 모두 자기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듯, 독이 묻은 프랑스어 사전 한 장 한 장을 뜯어 삼켜야 했다. 그녀는 그녀가 몸소 부딪치고, 맑은 눈으로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입으로 말했던 새로운 세계를 다시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봉건 왕조의 붕괴 과정 속에서 근대를 한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던 리진이라는 여인의 삶에서 여성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불화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풍부한 서사성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지의 서평에서는 󰡔궁중 무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한 궁중 무희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프랑스 외교관의 마음을 사로잡은 리진이라는 궁중의 무희를 내세워 격동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특이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 자기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국의 역사를 그 배경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고립된 조선과 선진화한 유럽 특히 프랑스의 사회 문화적 불균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아시안 리뷰 오브 북스(Asian Review of Books)에서는 아주 긴 서평을 냈다. 맨 아시아 상을 수상한 작가 신경숙의 신작소설 󰡔궁중 무희󰡕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힐 수 있는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서구의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 있고 익숙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하다. 작가 신경숙은 바로 그런 점에 착안 하여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의 궁중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여 이를 재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문화와 한국의 풍속을 아름답게 대조해 보이는 이 소설은 한 운명적인 궁중의 무희의 생애를 통해 한국인의 삶의 우여곡절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번역자의 유창한 영어 번역이 이 소설의 정감을 끝까지 살려내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 국영라디오 (National Public Radio)의 북 리뷰에서는 신경숙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명으로 꼽히는 합당한 이유가 이 소설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마음의 미묘함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를 이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 왕궁의 아름다운 무희였던 리진은 프랑스로 건너가 거기서 비단 부채를 만들면서 자신에게 밀려드는 슬픔을 거기에 수놓는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소설 속에 담겨 있지만 그것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살아나고 있다고 평했다.

신경숙은 지난 2011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로 세계문학의 무대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I’ll Be Right There󰡕(2014)󰡔외딴 방 (The Girl Who Wrote Loneliness󰡕(2015)을 영어로 번역 출판하면서 그 문학의 고뇌와 깊이를 자랑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리진 (The Court Dancer)󰡕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뛰어넘는 신경숙의 소설적 상상력의 폭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후 몇 년을 칩거하고 있는 그녀가 다시 독자들 앞에 멋진 소설을 가지고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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