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소확행(小確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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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그의 수필에 만들어 썼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널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말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일본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 낸 신조어(新造語)이기 때문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은 1986년 일본 광문사(光文社)에서 발간한 하루키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 (ランゲルハンス午後)>에 처음 등장한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어 말아둔 깨끗한 팬티가 가득 쌍ㅎ여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하나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는 さいけれどもかな(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을 그는 줄여서 소확행[小確幸, しょうかっこう]’이라고도 썼다. 그런데 실제로 이 말을 책의 표지에 노출시켜 광고한 것은 그가 19965월 신조문고(新潮文庫)로 펴낸 수필집 <うずまきのみつけかた>이다. 이 제목을 무어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표지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문구를 줄임말로 쓰지 않고 그대로 표시하기도 했다. 이 수필집은 하루키가 미국 하버드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보스턴 근처의 케임브리지에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체류했던 체험기를 중심으로 하여 적은 것이다. 당시 하루키는 보스턴 마라톤에도 직접 참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도 생활 속에 개인적인 소확행(비록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다소간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주 심한 운동한 후에 찬 맥주를 마시면서 음, 맞아, 이것이다 하고 혼자서 눈을 감고 무심코 중얼거리는 그런 감흥이라든지...’하는 구절이 본문 속에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소확행이라는 말은 벌써 수년전에 타이완에서 굉장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타이완에서 이 말이 유행한 것은 2014년 무렵이다. 타이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기 때문에 하루키가 만들어낸 이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이 말은 타이완에서 먼저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유행어가 되었다. 그러자 책의 이름, 상품의 광고, 심지어는 회사의 이름까지도 소확행을 쓸 정도가 되었다. 급기야 타이완 총통 선거 중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연설도 등장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도록 만드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시대적 요구와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제는 소확행이 아니라 대확행(大確幸)’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을 문학사상사가 일찍 소개한 바 있다. 문학사상사에서 2001년에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은 그 제목 자체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한 바퀴를 돌아 타이완에서 유행하다가 지금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를 대변하는 말처럼 굳어지고 있다. 2018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를 나타내는 말로 이 말을 지목했다고 크게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이 말과 함께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 ‘케렌시아(Querencia, 일상적 삶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 등도 거론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소확행이 여기저기서 화제거리로 등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소비 트렌드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삶의 자세나 가치관을 말해주는 용어로 확대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언론에서조차도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낸 소확행이 한국사회의 현실적 단면을 보여주는 키워드가 되었다고 보도할 정도다. 젊은 세대가 취직하기는 어렵고 돈벌이도 쉽지 않아서 삶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모두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의 만족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설명도 그럴듯하다.

실제로 최근의 한 조사에서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소확행’ ‘워라벨’ ‘욜로등의 신조어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말해주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소확행은 물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인데, ‘워라벨(work)’(life)’조화(balance)’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하여 하나로 줄여놓은 신조어다. ‘욜로라는 말은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따서 줄여놓은 말이다. 현재의 자기 삶에서 느끼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뜻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지장으로 주거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자기만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요즘의 젊은 구직자들이 소확행’(51.8%) ‘워라벨’(30%) ‘욜로’(18.2%) 등의 순으로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패턴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근래 흔히 삼포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한국 젊은 세대들이 성취가 불확실한 취업, 결혼, 육아, 내 집 마련 같은 큰 행복을 좇기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에서 거창한 목표나 꿈을 접어버리고,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이 강해졌다는 말이다.

 

2

 

소확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무리카미 하루키는 전 세계에 수백만의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명성을 얻게 된 과정은 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때만 해도 일본의 평단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아주 인색했다. 일본 문단은 하루키의 소설을 그저 한때 대중 독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통속적인 소설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문학사상사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에 대해 일본 출판계도 의아스러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를 비롯하여 <해변의 카프가> <태엽 감는 새> <댄스 댄스 댄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고 그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때마침 한국 문단은 1980년대까지 이어왔던 역사와 현실을 중시하는 소설의 이른바 거대담론이 정치 사회적 민주화의 확립 과정 속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젊은 계층은 개인적 삶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통해 개인적 삶의 질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만나게 새로운 소설적 세계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한국의 소설에서 흔히 만났던 인물의 사회 계급적 성격을 규정하던 여러 가지 징표들이 모두 지워져 있다. 오히려 일상적 삶의 현실 자체가 인물의 성격을 해체한다. 그러므로 소설 속의 인물은 그 개인적 존재와 삶의 현실 사이에 애매한 긴장이 가로놓여 있지만 대체로 그 사회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예컨대 <상실의 시대>에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사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라는 주인공이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거의 20년이 지나버린 19살 때의 나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첫사랑의 아득한 기억과 그 기억 속에서 끌어올려지는 것들은 사랑의 아픈 실패와 친구의 자살 등으로 회색빛으로 바뀌어버린 젊음 시절의 풍경이다. 이 소설에서 감촉되는 도시적 감각,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적 고뇌, 청춘의 방황과 아픈 사랑 등에는 역사라든지 현실이라든지 하는 시대의식 자체가 담겨져 있지 않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파편화된 개인들이며 이들이 겪는 삶의 허무감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세계문학의 무대로 끌어올린 <태엽 감는 새>는 직장을 그만 둔 사내를 화자로 등장시켜 놓고 있다. 그는 도쿄 교외에 있는 집에서 아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하루 종일 혼자 뒹군다. 1930년 이상의 소설 <날개>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부조리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주인공의 삶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의 삶의 사회적 조건을 어느 정도 규제해온 가정이라는 사회단위가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직장을 벗어나고 가정으로부터 유리됨으로써 기성적 질서로부터 해방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적인 인물 설정은 소설적 서술의 기법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우선 행위의 인과적 논리가 철저하게 거부되고 있으며, 구성의 원리라고 하는 고전적인 소설적 규범도 무너지고 있다. 상황의 끊임없는 변화와 그 내밀성을 천착하기 위해 이야기는 해체되고, 잡다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임의적인 환상들이 닥치는 대로 그려진다. 소설속의 이야기는 모두 단편적인 것이 되고 행위는 연속성을 벗어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보여주는 이러한 새로운 기법은 경험적 현실 세계의 다층성과 가변성, 그리고 그 불연속적인 자의성을 드러내기 위한 고안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력의 전환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운동을 추동했던 거대서사의 소멸이라는 소설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크게 충격을 던져준다. 하루키 열풍이 일어나게 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소설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주제의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동안 이미 독자들은 하루키의 소설의 새로운 상상력과 그 기법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이후 지난 30년 동안 2, 3년에 한두 편씩 화제의 작품들을 줄곧 내놓았다. 소설가로서 끈질기게 글을 쓰는 일로서 자기 존재를 스스로 입증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다양한 취미활동도 꾸준히 실천한다. 직업으로서의 작가라는 위치를 잠시도 잊지 않고 그는 자신을 조련하고 있다. 자신의 체력을 위한 스포츠 활동, 세계의 여러 지역에의 여행과 그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와 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는 적당하게 어물적 넘기는 법이 없이 언제나 전문가답게 자신을 보여준다. 이 같은 소설가로서의 프로 근성과 끈질긴 탐구력은 세계의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점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에서는 그가 동원하고 있는 모든 소재와 대상이 풍부한 이야기거리로 살아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 전통 속에서 소설의 양식이 추구해온 서사의 문법을 자신의 방식으로 고쳐놓고 있다. 그는 과거의 소설이 집착했던 방식대로 인물을 통한 사회 역사적 특수성의 발견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본인이라고 성격지워 말하기 어려운 특이한 개성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비록 일본인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구태여 그들에게 어떤 지역성을 언급해야 한다면 세계인이라는 명명이 오히려 더 설득적일 수가 있다. 그들의 삶의 태도나 사고방식은 뉴욕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와도 비슷하고 파리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젊은이와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한 젊은이들은 서울의 홍대 앞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개성적이지 않은 특이한 개성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에서 창조해낸 성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문(美文)의 스타일리스트는 아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하나의 의미를 지탱하기 위해서 그가 발굴하고 있는 흥미로운 소재뿐만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말해야 할 것인가를 고심한다. 화제작이었던 <해변의 카프카>는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듯이 자기 소재를 재해석하여 배치하고 있다. 이 소설의 이야기에서 갈피를 잡아내기 어려운 사건들의 중첩과 충돌,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상실한 채 떠도는 인간의 삶의 도정은 궁극적으로 삶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허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질문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어떻게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는 그 소설적 미학을 논할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심하고 있는 어떻게의 문제는 대상을 파악하고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의 문제는 일상의 소재를 소설이라는 예술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방법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묘사의 매력보다는 서술의 힘에 의존한다. 일본 소설이 하나의 전통처럼 내세웠던 섬세하고도 예리한 언어 감각과 문체를 하루키는 별로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쉽고 활달하게 서사를 전개시키고 이야기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어가는 서술에 힘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소설 속의 이야기는 특정의 장면이나 특정의 사물에 묘사가 집중되어 이야기의 진행과 흐름이 멎어버리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특정 대상에 대한 지배적 인상의 묘사적 표현보다는 다양한 시각의 서술이 이어진다. 결국 소설의 이야기는 어떤 경우 빠르게 어떤 경우는 느리게 진행되면서도 그 장면의 전환을 쉽게 이루어나간다. 이 평이한 문체를 통한 서술의 힘을 바탕으로 하루키는 그가 선택한 소재를 중심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는 이야기의 힘을 따라가는 이야기꾼이지 언어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자랑하는 스타일리스트는 분명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특징이 오늘의 세계문학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매료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전환의 물결 속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지역과 종족과 언어의 경계를 뛰어 넘어서 소설이라는 양식이 거두어들이고 있는 특이한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이 한국 소설에도 기법과 정신의 전환을 새롭게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과장된 설명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이 하루키 소설에 빚지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대 한국 소설 독자들을 매료시키면서 세계문학의 무대로 도약했으며 한국의 소설도 하루키를 만나면서부터 소설의 방법 자체에 대한 반성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3

 

무리카미 하루키는 일본 작가이지만 이제 세계적 지성으로 그 목소리를 누구나 경청한다. 그가 두어 해 전에 동아시아의 문화적 연대를 강조하면서 일본과 중국을 둘러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 한국과 일본의 독도 문제로 빚어진 분쟁을 두고 했던 말도 다시 생각난다. 그는 영토갈등을 둘러싼 갈등과 그 광적인 반응이 마치 술 취한 사람의 행동을 닮았다.’ 라고 꼬집으면서 지성의 부재를 논박했다. 하루키는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가 문화적 등가교환임을 천명하면서 이러한 문화 교류야말로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시대의 양심으로 세계적 지성으로 존경받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정치적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예지(叡智)와 통찰력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낸 소확행이라는 말이 타이완에서 유행어가 되고 한국의 젊은이들의 삶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성인으로서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세계적 작가로서의 놀라운 상상력, 인간과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 등으로 본다면 이런 경향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이 삶에서 추구해야 하나의 목표를 말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소확행이라는 말 자체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업주의적으로 새로운 의미까지 덧붙여져 부추겨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루키는 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작은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리며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니스 코트에서 신이 나게 테니스를 치고 나서 차디찬 맥주를 들이키는 기분이라든지, 샤워를 마치고 포송한 새 내의를 갈아입으면서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라든지, 아파트 정원을 걷다가 보도블럭 사이에서 키 작은 노란 민들레꽃이 막 피어난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경이로움 같은 것은 우리가 그 가치를 놓치고 있던 감정들이다.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소확행도 바로 그런 것들이다. 갓 구워낸 식빵을 손으로 찢어먹을 때 느끼는 신선하고도 고소한 맛이라든지, 서랍을 열었을 때 새 팬티가 착착 잘 접혀서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그런 기분을 그는 소확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나 기쁨의 감정은 일부러 그런 것을 추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즐기는 그런 기분이다. 요즘의 젊은 세대가 삶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고 소확행에 집착한다거나 자기들이 이루어낼 수 있는 작은 성취에 민족하면서 살고 있다는 식의 해석까지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은 오히려 하루키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을 생각하면서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들이 겪는 힘든 삶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아무 대책도 없이 마치 무능력자처럼 사회의 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매일 같이 귀가 아프도록 들으면서도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과제이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는 2차 회담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정치인들은 여전히 입 바른 소리만 뱉어놓으면서 파당적인 이익만 따지고 말로만 청년 일자리 수만 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런 속에서 어두운 현실에 좌절하면서 무기력에 빠져버린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삼포세대오포세대하면서 자기 비하에 빠져들어 있다. 이 환멸의 시대를 스스로 견디어 내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딱하다. 경제가 위기라든지 일자리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해에 수십만의 대졸 학력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제 와서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라고 훈수하는 것은 그들을 그렇게 키워낸 사회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미래의 한국 사회를 새롭게 이끌어갈 이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기성세대의 시대적 임무에 대한 거역이다. 젊은이들이 삶의 꿈을 상실한 채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라고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비하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좋든 싫든 우리 사회의 미래는 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가 일어설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미래의 주역들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고 자기 삶에 대한 권한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어떻게 사회를 떠맡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 있는 소확행은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에서 일상적 현실의 삶 가운데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잘한 행복감이다. 우리 젊은 세대가 지금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일상의 소소한 작은 행복이 아니다. 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생존 자체를 위기로 체감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생활 태도라든지 소비 트렌드라는 것을 소확행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 본의와는 너무 다르고 별로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한 끼의 식사조차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인 이들에게 갓 구워낸 식빵의 고소하고도 신선한 맛을 느끼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루 종일 고시촌 구석방에 틀어박혀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는 젊은이가 서랍 속에 가득 새 팬티를 가지런히 개어 넣어두고 그걸 꺼내어 입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한가롭게 테니스를 즐기고 기분 좋게 맥주를 들이키며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겠는가?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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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찾은 김기림의 시 5

 

김기림이 해방 직후에 발표한 씨 5편을 발굴하여 공개한다. 기존의 자료에 실려 있지 않은 작품들이다. 필자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김기림전집 전4](민음사, 2019년 출간 예정)의 새로운 출간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 찾은 작품들이다.

김기림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에는 고향 근처인 함경북도 경성 소재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영어를 가르쳤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서는 임화, 이태준, 김남천, 이원조 등이 주도했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가담하여 새로운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2월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흡수하여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면서 좌익문단의 대표 조직으로 등장했다. 김기림은 이 단체의 중앙집행위원 및 시부 위원장이 되었고,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지부 위원장을 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해 9월 경성대학(국립 서울대학교 전신)에서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1948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까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던 상당수의 문인들이 활동무대를 북한의 평양으로 옮기면서 이른바 월북 문인이 되었지만 김기림은 월북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문학가동맹 시대의 활동을 청산하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사상적 전향을 선언한 후 한국문학가협회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정치보위부원에 의해 연행당한 후 9. 28 수복 직전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그의 행적은 그 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1988년 월북문인 해금 조치 이후 문학사에서 그의 문학적 위상이 주목되면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 발굴한 작품들은 모두 해방 공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김기림이 서 있던 문단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울어라 인경아는 해방 직후 창간된 신조선보(新朝鮮報)(1945. 12. 27)발표한 작품이다. 1945해방을 맞은 을유년 제야에 종로 인경을 울릴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들의 청원이 잇달았다. 미 군정청에서는 결국 이 청원을 받아들여 그 해 1231일 밤에 인경을 울리도록 허가하였다. 이 시는 그 소식을 듣고 쓴 작품으로 노래의 가사 형태로 만들어졌다. 해방의 종소리에 대한 뜨거운 감회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한성일보(漢城日報)(1946. 3. 2)에 발표한 것으로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3.1절의 뜨거운 감회를 노래한 작품이다. 팔월(八月) 데모행렬(行列)에 부치는 노래현대일보(現代日報)(1946. 8. 16)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 뒤 제목을 바람에 불리는 수천 기빨은이라고 바꾸고 일부 구절을 고쳐서 시집 [새노래](1948)에 수록했다. 원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여기에 소개한다. 백만(百萬)의 편을 잃고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47. 8. 7)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시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19477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에게 저격을 당해 서거하자 이를 추모하는 뜻으로 지은 작품이다. 여운형 선생은 조선인민당의 당수로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된 민족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통일(統一)에 부침신민일보(新民日報)(1948. 4. 18)에 발표한 작품이다. 남북한이 각각 서로 다른 이념적 지표를 내세우고 독자적인 정부를 만들고자 할 때 민족 통일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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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인경아

1

문 열어주어라

인경이 울겠단다

벙어리사리 마흔 해

인제 사내나 다 목 노아 울라

(후렴)

울어라 인경아

네거리의 황혼을 찌르며

네가 울면 나도 울마

삼천만(三千萬)이 다 울자

2

창살을 뜨더 줘라

인경이 울겠단다

이 땅에 고인 피 상채기

고이 씨스며 쓰다듬으며

3

뭉치어라 엉키라고

인경이 울겠단다

놈들의 칼과 채찍

함께 겪은 마흔 해 잊지 말라고

4

새나라 오신다고

소리쳐 울겠단다

겹겹이 감긴 어둠

떨어버리고 몸부리치며

                             [신조선보(新朝鮮報), 1945. 12. 27]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

해 없는 나라 굿게 닷힌 겨울의 문() 어두운 육지(陸地)에 펴지는 빙하(氷河)에 깔려 다 식어가는 역사(歷史)의 하상(河上)에 그러허나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 구름 사이 새어 흐르는 간열힌 햇볏에도 생명(生命)과 샘과 싹은 화산(火山)처럼 솟아젓다

누가 막으랴 철이 돌아와 가꾸는 이 없어도 산()과 들 욱어저 피어 눈이 모자라는 진달래꼿을-

민족(民族)의 기억(記憶) 속에 높이 세운 기념비(記念碑) 우리들의 삼월(三月)에 해마다 감기우는 젊은이 마음 또한 꼿다발이니 푸른 하늘 우러러 피어오르는 지튼 피빗은 자유(自由)와 아름다움 죽음보다 사랑하야 열열함이라.

늙은이는 이윽고 모든 것 무덤에 파뭇어 잇어도 버리련만 이 땅이 널린 곳 해마다 뒤니어 피어나는 젊은 싹 녹여버리는 식은 하늘과 소낙비. 세계(世界)가 모이는 날 나라 없는 머리 추어들 곳 없어 일허버린 조국(祖國)은 목숨보다 비싸더라. 어버이와 자손(子孫)들 드되어 일어낫으니 조여드는 독사(毒蛇)의 허리 비틀어 뻐기며 라오곤보다 사나웁게 소리첫드라.

조상(祖上)적 남기신 여러 번 빗나는 사연과 용맹한 기록 가지가지 지니지 못하는 못난 자손(子孫)들 미운 굴욕(屈辱)의 역사(歷史) 지워버리려 상처 바든 민족(民族)의 노염 불길처럼 국토(國土)에 덥여

 

우리들의 삼월(三月)

하늘하늘 뻣히는

세기의 봉수불이었다.

창칼에 땅이 찍겨 다시 어두운 강산(江山)이 꼿가튼 피와 눈물에 젓어 감추어진 민족(民族)의 마음 하늘가에 이즈러진 무지개 걸리어 닥처오는 시간의 저편에 새나라 찻어 민족(民族)의 방랑(放浪)은 시작하였었다. 구름과 눈물 아롱져 빗나는 달 삼월(三月)을 안고 .....

젊은 삼월(三月) 아네모네곱게 타는 달은 우리들의 자랑 무지(無知)한 세기(世紀)의 암벽(岩壁)에 피로 쓴 아름다운 항의(抗議).

흐린 하늘과 어즈러운 밤과 사막(砂漠)에 울리던 태양(太陽)의 예언자(豫言者) 일어나라...... 웨치는 목쉰 소리었다.

인제 삼월(三月)은 꺼질 줄 모르는 횃불. 우리들의 압날 곤()하고 괴로운 먼 길 낙심(落心)과 회의(懷疑) 비겁(卑怯)의 그림자 일일이 살워버리는 거룩한 불길이어라.

                                                                                           [한성일보(漢城日報), 1946. 3. 2]

 

팔월(八月) 데모 행렬(行列)에 부치는 노래

 

바람에 떨리는 수천 기빨은

창공()에 쏘는 인민(人民)의 가지가지 호소(呼訴).

 

소리소리 웨치는 노래와 환호(歡呼)

구름에 사모치는 백성들의 횃불

타다타다 빛도 없는 팔월(八月)의 횃불

 

아스팔트 뒤흔들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발자곡의 조수는

어둔 밤 설레는 파도소리냐.

닥아오는 새날의 발울림이냐.

                                                         [현대일보(現代日報), 1946. 8. 16]

 

백만(百萬)의 편을 잃고

 

당신은 자동차(自動車)를 싫여하섯다.

자동차(自動車)보다는 뻐쓰를

뻐쓰보다는 몬지 낀 길바닥을 것기를 좋아하섯다.

거기 띠끌을 쓰고가는 우리들 곁에 늘 오시고 싶은 때문이었다.

 

당신의 곁에는 총()칼 찬 친위대(親衛隊)도 아모것도 없었다.

그런 것은 비겁(卑怯)한 팟쇼의 대장(大將)들의 짓이라 하섯다.

백성에게 자유(自由)가 없고 억울한 죽엄이 그들 앞에 나날이 딩굴 적에

호올로 안전(安全)한 곳에 당신은 도시 앉었을 수가 없었다.

쓸어질지라도 다만 괴로운 인민(人民)의 속에 있기가 소원이섯다.

 

당신은 언제고 젊은이들의 벗

가난한 이웃과 불상한 사람들의 친구

아이들과 공차고 달리기 좋아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이었다.

그러기에 당신과는 참말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얘기할 수 있었고

마음 놓고 정권(政權)도 미끼리라 했다.

 

언제고 군중(群衆)의 환호(歡呼) 속에 나타나던 당신

성낸 사자(獅子)처럼 단상(壇上)에서 노호(怒號)하실 적에도

우리는 서산(西山)을 처다보며 뻑뻑 담배를 빨 수가 있었다.

야단맛고 벌벌 떠는 것은 팟쇼의 대장(大將)들과 인민(人民)의 적()들이고

우리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시달리는 백성을 등에 돌리고 반동(反動) 앞에

당신이 가로막아 섰을 때

우리는 참말이지 신이 났었다.

그러기에 당신의 일홈과 함께 인민(人民)이 부르는 만세(萬歲) 소리는

가슴과 뱃장에서 아니 발톱에서 머리끝까지 울려나왔다.

당신은 벌써 당신 자신(自身)이 아니오

모든 인민(人民)의 당신이었다.

 

뚫어진 차()에 실려 소리없이 종로(鐘路)로 도라오실 적에

골목의 과일장수도 신기우려도 어멈도 여점원(女店員)

기구와 저울과 수판을 내던지고 엉엉 울었다.

기자(記者)는 연필을 팽개첫으며 늙은이와 소년(少年)

벽보(壁報) 앞에 그만 줏앉었다.

그들은 그들의 겻테서 백만(百萬)의 편을 한꺼번에 잃었던 것이다.

 

지금 전에 없이 사나운 반동(反動)의 회오리 속에서

아우성치는 인민(人民)의 곁에 아모리 도라보아야 당신이 안 계시다.

오늘은 웅변(雄辯) 대신에 무거운 침묵(沈默)으로써 가르키시는

승리(勝利)로 가는 싸움의 길이 만() 사람의 눈앞에 눈물에 어려 빛날 뿐

피로써 당신이 헤치신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의 길이

횃불처럼 별처럼 떨리고 있을 뿐.

-몽양(夢陽) 선생(先生)을 일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1947. 8. 7]

 

통일(統一)에 부침

 

우리는 본시 하나이었다.

뼈저린 챗직 아래서도 끌어안고 견디던 하나이었다.

소리소리 지르면 제절로 반항(反抗)의 합창(合唱)이던

눈물어린 망향(望鄕)의 쓴 잔도 함께 난운

! 둘을 모르는 하나이었다.

팃기 없는 하늘 아래

문의 놓은 기와와 그릇과 비단과 종종한 말

모두 아름다운 것

죽어지라 사랑하며 살아온 내력(來歷)도 하나.

 

인제 온 백성을 들어 구임(口臨) 문제(問題)의 막다른 골로 몰아넣어

형제(兄弟) 있는 곳과 소식 또 오래인 꿈

돌볼 새 없이 만드는

이 놀라운 실리주의(實利主義)의 천재(天才)에 우리 모두 항거(抗拒)하리라.

짓밟힌 아름다운 것 함께 뫃여 소곤소곤 살아갈 길 지키기 위하여

 

이방(異邦) 친구들에게 일르노니

한데 뭉친 민중(民衆)의 민주주의(民主主義) 대신에

쪼각난 폭군(暴君)의 민주주의(民主主義)

그대들에게 우리 언제 부탁한 기억(記憶)이 없다.

사월(四月)달 진달레 뿌리 벋어

말래도 굳이 벋어

남북(南北)으로 만발(滿發)한 산맥(山脈)과 핏줄

뚜드러져 굼뚤거리는 것

뉘 감히 끊을 것이냐?

 

흐르는 강물도 철로(鐵路)도 전선(電線)도 변하는 계절(季節)

오로지 한 소리 아래 움지기고 시퍼

모든 시내 강물 바다로 뫃이듯

진달레 개나리 욱어져 피는 한 보금자리로

우리 모두 한데 엉키어 논이지 말자.

 

틀어쥔 손과 손 악수(握手)가 아니라

()과 북()의 자국도 없는 용접(鎔接)

모든 열역학(熱力學)의 법칙(法則)을 기우려

거만한 이방(異邦) 사람들의 눈앞에서

보아지라 우리 모두 감아매리.

                                                     [신민일보(新民日報) 194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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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다(Leda)와 백조

문학칼럼 2018. 11. 20. 13:38 |

레다(Leda)와 백조

  

 

폼페이에서 발견한 벽화

이태리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는 화산재 아래 묻혀 있던 곳이다. 2천년 전인 서기 79폼페이에서  23 km 떨어진 베수비오 산(Mount Vesuvius) 대폭발을 일으켰다. 베수비오 산은 오랜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이 사화산처럼 서 있던 산이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폼어나왔다. 그리고 그 화산재가 그대로 인근의 도시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는  7m 달하는 화산재에 덮인 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16세기 말에 그 존재가 발견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발굴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 폼베이에서 고대 로마 시대의 관능적인 벽화가 발견돼 고고학계가 탄성을 터뜨렸다폼페이 유적 지구의 구조 보강 작업 도중 백조의 형상을 한 주피터 신이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임신시키는 장면을 생생히 묘사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지의 한 저택의 침실 벽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약 2천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감과 레다 여왕의 관능적인 표정이 살아있어 발견자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조로 변신한 주피터 신이 레다를 임신시킨 이야기는 당시 폼페이에서 주택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희랍 신화 속의 레다와 백조

 

희랍의 신화 가운데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Leda)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레다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 디오스쿠리(Dioscuri)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왕비 레다를 약칭하여 디오스(Dios)’라고 한다. 디오스의 여신이라고도 부른다. 레다는 원래 스파르타 왕 틴다리오스(Tyndareos)의 왕비이며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에우로타스(Eurotas) 강에 나아가 자주 목욕을 한다. 올림포스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던 제우스가 이 아름다운 미녀의 자태를 보고 마음을 태운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함부로 하기는 어렵다. 제우스는 때를 기다린다. 마침 레다가 작은 연못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본 제우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술수를 부린다. 레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곁으로 갑자기 하늘에서 백조 한마리가 날아든다. 그리고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백조를 잡아먹기 위해 주위를 맴돈다. 백조는 독수리를 피하기 위해 허둥댄다. 레다는 백조를 가엾게 여겨 자기 품에 꼭 안아 숨긴다. 레다가 백조를 품은 사이 백조는 강폭한 사내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레다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백조는 제우스의 변신이고, 독수리로 가장한 것은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다. 아들 헤르메스가 아버지의 욕심을 돕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제우스와 일을 치른 그날 밤, 레다는 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와 잠자리를 갖은 후에 임신한다. 얼마 뒤에 그녀는 사람 대신 알을 두 개 낳는다. 그 두 개의 알에서 각각 남녀 1명씩 2쌍의 쌍둥이가 태어난다. 한쪽은 제우스의 자식이요, 다른 한쪽은 인간 틴다리오스의 자식이다. 제우스의 알에서 태어난 자식은 헬레네와 오빠인 폴룩스(폴리데우케스). 틴다레오스의 알에서 태어난 자식은 클리템네스트라와 오빠 카스토르이다. 이 가운데 남자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디오스쿠리즉 제우스의 아들들이라고 부른다.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 신를 끌어안고 있는 왕비 레다의 모습은 수많은 미술품으로 만들어져 전해온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레다와 백조>는 그 가운데에서도 유명한데, 이번에 발견된 벽화와 그 모티프가 아주 유사하다.

 

시인 예이츠의 <레다와 백조>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illiam B. Yeats)는 그의 시 <레다와 백조 Leda and the swan>에서 제우스 신과 왕비 레다의 관계를 말해주는 그리스 신화를 시적으로 변용하여 이렇게 그려낸다.

 

갑자기 덤벼들어; 백조는 큰 두 날개를 조용히 치며

비틀거리는 여인 위에 덮친다, 여인의 허벅다리는

새의 어둔 깃가지에 쓰다듬기고, 목은 주둥이에 잡혀,

어찌할 수 없이 여인의 가슴은 백조의 가슴에 껴안긴다.

 

공포에 사로잡혀 얼빠진 손가락이 어떻게 맥 풀린 허벅다리에서

깃에 싸인 그 영광을 밀어젖힐 수 있겠는가.

백색의 급습(急襲)에 내맡긴 육체가 그 품안에서

이상히 가슴 울렁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후략)

 

A sudden blow: the great wings beating still

Above the staggering girl, her thighs caressed

By the dark webs, her nape caught in his bill,

He holds her helpless breast upon his breast.

 

How can those terrified vague fingers push

The feathered glory from her loosening thighs?

And how can body, laid in that white rush,

But feel the strange heart beating where it lies?

 

이 시를 소개하고 있는 한 영문학자(이창배, 20세기 영미시의 이해, 24-26)의 해설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레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레다를 범한다. 이것은 신이 인간의 세계로 하강하여 인간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신인교섭(神人交涉)’의 모티프로 고정되어 이야기 속에 전해지게 된다. 예이츠는 이 신화의 한 장면을 그의 시 속에 끌어들여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그리스의 문명이라는 것이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신과 왕비 레다의 교섭의 장면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 신과 인간의 육체적 교섭은 그리스도의 수태고지(受胎告知)와 맞먹는 중대한 역사적 순간이다. 예이츠가 이 극적인 장면을 시적 상상력으로 포착하여 인간의 문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담아낸 셈이다.

 

이상의 소설 동해(童骸)속의 디오스의 여신

 

리 문학 가운데에는 이상(李箱)의 소설 동해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디오스의 여신인 레다의 이야기가 패러디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 장면은 눈이 밝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찾아내기 어렵다. 소설 동해의 이야기는 요즘의 풍속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남녀관계를 그려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라는 인물은 작가 이상 자신으로 위장하면서 일종의 메타픽션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어느 날 오후 혼자 살고 있는 단한칸 방으로 이라는 여인이 가방을 싸들고 찾아온다. ‘는 이 여인의 남편인 이라는 사내와 서로 알고 지내는 친구이다. ‘이 남편과 사소한 다툼 끝에 집을 뛰쳐나와서는 남편 친구인 를 찾아온 것이다. ‘과는 못 살겠다면서 에게 한번 같이 살아보잔다. 이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을 내치지 못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이튿날 그녀를 데리고 에게 찾아간다. ‘을 나무라면서 그 아내인 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에 과의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벌어진다. 이때 이 자신을 디오스의 여신이라면서 두 사내의 언쟁 사이에 끼어든다.

지이가 디오스의 여신(女神)입니다. 둘이 어디 모가질 한번 바꿔 붙여 보시지요. 안 되지요? 그러니 그만들 두시란 말입니다. 윤한테 내어준 육체는 거기 해당한 정조(貞操)가 법률처럼 붙어 갔던 거구요, 또 지이가 어저께 결혼했다구 여기두 여기 해당한 정조가 따라왔으니까 뽐낼 것두 없능거구, 질투헐 것두 없능거구, 그러지 말구 겉은 선수끼리 악수나 허시지요, ?”

윤과 나는 악수하지 않았다. 악수 이상의 통봉(痛棒)이 윤은 몰라도 적어도 내 위에는 내려앉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여기 앉았다가 밴댕이처럼 납작해질 징조가 아닌가.

 

여기서 이 언급하고 있는 디오스의 여신은 물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말한다. 동해의 여주인공 은 하룻밤 사이에 남편 를 번갈아가며 관계한 셈이다. 그녀는 신화 속의 디오스 여신, 즉 스파르타 왕비 레다가 백조로 변신했던 제우스와 관계를 맺고 다시 그날 밤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와 관계했던 사실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꾸어 패러디한다. ‘은 자신을 디오스의 여신이라고 자칭하면서 의 언쟁을 말린다. 이 대목이야말로 동해의 텍스트에서 여주인공의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은 자신의 얼굴에 디오스의 여신을 덧씌우고는 두 사내 사이를 오가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조를 내세워 이들을 납득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디오스의 여신이라면 도대체 누가 제우스이고 누가 스파르타의 왕 틴다리오스일 수 있겠는가?

소설 동해는 여주인공 의 일탈을 통해 여성에게 요구해온 정조(貞操)의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것은 도덕이라든지 윤리적 가치라든지 하는 것이 모두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위한 고도의 수사적 장치를 읽어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소설의 제목 자체도 처녀와 헌 게집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동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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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 최고의 비평가 김윤식 교수

 

어느 시대의 문학에서도 최고의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김윤식 교수의 경우에 그렇다. 김윤식 교수 이전에는 김 교수와 같은 비평가가 우리 문단에 없었는데, 김 교수 이후에도 그와 같은 비평 작업을 감당할 만한 비평가가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독보적인 활동을 보여 온 김윤식 교수에게 우리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말은 전혀 아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김윤식 교수가 평생을 두고 쌓아온 2백여 권에 이르는 엄청난 저술과 그 비평적 성과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김윤식 교수는 비평이란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자신의 비평 작업은 발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단한 비유적인 진술은 김 교수 비평의 성격을 말해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문단의 한복판에 발을 내디디고 든든하게 자신의 거점을 정한 뒤, 그 역사적 현장성을 파악하면서 작품을 논한다는 자부심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런 실증성과 시대성의 인식이야말로 김 교수가 남긴 모든 비평 작업에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방법론의 기반이기도 하다.

  비평이란 한 시대의 문학이 그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에 긴요하게 요구된다.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적 방법을 통해 이미 이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의 발로 쓰는 비평이란 논리적 형식보다는 실증적인 내용에 더욱 관심을 둔다. 사변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것에,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앞세운다. ‘발로 쓰는 비평은 문단의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비곡절을 안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비평을 그 대상이 되는 문학 작품과 나란히 내세우고자 한다. 이 특이한 작품과의 맞서기를 통해 그 문학을 만들어낸 수많은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작가와 더불어 삶과 문학을 생각하며 현실에 골몰한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이 강조된다.

  김윤식 교수는 평생을 우리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비평이라는 것이 그 대상으로서의 작품이 없으면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평 작업과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모두 다시 작품으로 떳떳이 돌아오고자 하는 목표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비평의 실천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의 비평은 그 방법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작품의 의미에 활기를 불러일으켜 주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김윤식 교수는 문단비평과 강단비평의 간격을 없애버린 비평가다. 김 교수는 당대 문학의 과제를 전체적인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문학사적 사실이 지니는 문제성을 당대의 문학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김 교수가 자신의 수많은 저서와 평문들에서 끈질기게 다뤄온 것은 우리 문학에서 근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김 교수가 먼저 선택한 것이 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역사적 체계화 작업이다. 김 교수가 자료를 조사 정리하고 사()적인 맥락을 세워나가면서 체계화한 한국 근대문학 비평은 우리 문학이 추구해온 문학적 근대성의 자기규정과 그 논리에 대한 해석이었음은 물론이다.

  김 교수의 비평사 연구는 문학을 다른 어떤 사상으로 대치시켜 놓기 위한 작업은 결코 아니다. 그는 문학의 위상을 그 사회 문화적 논리의 그물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고자 한다. 김 교수의 대표적 업적으로 손꼽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바로 이러한 작업의 첫 성과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이 작업에 뒤이어 한국의 근대비평가들을 자신이 엮은 비평사의 틀 속으로 담아나간다. 방대한 규모의 비평적 전기로 그 문학적 삶의 비극성을 재구(再構)해낸 임화 연구를 비롯해 박영희, 백철, 이헌구, 최재서 등에 대한 연구에서 김 교수가 비평사의 그물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윤식 교수의 소설 읽기는 작가와 비평가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맞서는 작업에 해당한다. 이 맞서기 작업의 첫 대상이 이광수였음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라는 저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맞서기 작업은 승부를 결정짓는 싸움은 아니다. 서투른 독자들은 김 교수에 의한 이광수 극복을 운위(云謂)할지도 모르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이광수를 오늘의 현실 속에 다시 세우고 그와 함께 문학과 역사를 논하며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소설을 예술이라고 믿었던 김동인의 오만한 모습도 김 교수의 어깨너머에 보이고, 관점의 중립을 소설적 미덕으로 자랑했던 염상섭도 김 교수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천재 이상도 김 교수의 왼쪽에서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김 교수와 동시대를 살아온 최인훈도, 이청준도, 박완서도 그 뒤에 둘러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모든 작가에게 김 교수는 집요하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과 소설적 아이러니의 문제를 다시 묻고 대답을 재촉한다.

  이 쉼 없는 대화와 맞서기를 통해 김 교수는 작가를 일떠세우고 딴전부리는 작가를 채근하며 그들과 함께 문학과 역사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통해서 김윤식 교수가 극복하고자 한 것은 소설의 형식에 미학적 요건을 부여해온 많은 이론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근대소설의 운명을 논하기 위해 김 교수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을 극복해야 했고 루시아 골드만의 숨은 신을 우리 소설 속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세상을 떠나셨다. 김 교수의 비평 작업은 언제나 삶과 예술의 총체적 의미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비평은 후학들에게 우리 문학사 전체의 무게만큼이나 벅차다. 하지만 이 짐을 감당해야 할 후학들은 사실 행복하다. 아무런 짐의 무게도 가늠할 수 없던 때에 비평의 논리와 방법에 홀로 매달려야 했던 김 교수의 힘든 노력에 비하면, 감당해야 할 몫을 그 무게만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김윤식 교수님! 이제 펜을 놓으시고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교수신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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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宮中) 무희(舞姬) 리진

 

지난 8월 초에 신경숙의 장편소설 󰡔리진 󰡕(2007)이 앤턴 허(Anton Hur)의 번역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아마존에서는 이미 이 책의 보급판을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중요 서점에도 이 책이 전시되고 있다. 책의 제목은 궁중 무희(The Court Dancer)’로 바뀌었다. 소설 󰡔리진 󰡕은 한국에서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는 원제명이 푸른 눈물이었다. 신문 연재본과 한국어 단행본 그리고 영역본이 각각 그 제목을 바꾸어 달고 나온 셈이다

 

조선 말엽 궁중의 무희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리진은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국내의 문헌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백년전 프랑스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조선에 온 프랑스 외교관과 궁중 무희 리진에 대한 사연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이 외교관을 따라 파리로 가서 우울증에 걸려 지냈다는 간단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경숙은 리진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살려낸다. 주인공 리진은 기울어가는 왕조의 마지막 명운을 붙잡고 섰던 왕비의 총애 속에서 궁중의 무희로 자라났다. 조선의 궁중에서 나비 같이 춤을 추던 이 아릿다운 여인은 낯선 프랑스로 건너가 물빛 드레스를 입고 파리의 거리를 거닐었다. 신경숙은 이 여인에게 모국어의 영역을 벗어나 프랑스어를 습득하게 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모파상의 작품을 낭독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는 이 새로운 삶이 환희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무너지고 있는 조선 왕조와 그 왕조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에 담고 있던 왕비만이 걱정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허용된 각별한 운명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알아낸 역사를 살아야 했고, 그 자신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 자신만의 기억 속에 사랑을 담았다.

모두가 망각해버린 이 여인의 삶을 통해 작가 신경숙이 말하고자 한 것은 패망해 가는 왕조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리진은 우여곡절 끝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서구의 근대 문물을 몸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참극의 주인공이 된 왕비(명성황후)의 죽음의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알리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에서 리진은 참혹하게 죽어갔다. 그녀가 서양을 배우기 위해 터득했던 프랑스어를 모두 자기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듯, 독이 묻은 프랑스어 사전 한 장 한 장을 뜯어 삼켜야 했다. 그녀는 그녀가 몸소 부딪치고, 맑은 눈으로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입으로 말했던 새로운 세계를 다시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봉건 왕조의 붕괴 과정 속에서 근대를 한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던 리진이라는 여인의 삶에서 여성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불화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풍부한 서사성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지의 서평에서는 󰡔궁중 무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한 궁중 무희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프랑스 외교관의 마음을 사로잡은 리진이라는 궁중의 무희를 내세워 격동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특이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 자기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국의 역사를 그 배경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고립된 조선과 선진화한 유럽 특히 프랑스의 사회 문화적 불균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아시안 리뷰 오브 북스(Asian Review of Books)에서는 아주 긴 서평을 냈다. 맨 아시아 상을 수상한 작가 신경숙의 신작소설 󰡔궁중 무희󰡕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힐 수 있는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서구의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 있고 익숙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하다. 작가 신경숙은 바로 그런 점에 착안 하여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의 궁중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여 이를 재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문화와 한국의 풍속을 아름답게 대조해 보이는 이 소설은 한 운명적인 궁중의 무희의 생애를 통해 한국인의 삶의 우여곡절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번역자의 유창한 영어 번역이 이 소설의 정감을 끝까지 살려내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 국영라디오 (National Public Radio)의 북 리뷰에서는 신경숙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명으로 꼽히는 합당한 이유가 이 소설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마음의 미묘함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를 이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 왕궁의 아름다운 무희였던 리진은 프랑스로 건너가 거기서 비단 부채를 만들면서 자신에게 밀려드는 슬픔을 거기에 수놓는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소설 속에 담겨 있지만 그것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살아나고 있다고 평했다.

신경숙은 지난 2011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로 세계문학의 무대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I’ll Be Right There󰡕(2014)󰡔외딴 방 (The Girl Who Wrote Loneliness󰡕(2015)을 영어로 번역 출판하면서 그 문학의 고뇌와 깊이를 자랑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리진 (The Court Dancer)󰡕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뛰어넘는 신경숙의 소설적 상상력의 폭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후 몇 년을 칩거하고 있는 그녀가 다시 독자들 앞에 멋진 소설을 가지고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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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올해는 없다

 

 

올해 가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성명을 보면, 한림원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신 내년에 수상자를 2명 선정하겠다고 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는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수상자를 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대중의 신뢰 회복을 언급하고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궁금하다.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다고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외신들이 전하는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은 모두 18명이다. 그 가운데 카타리나 프로텐손이라는 여성 회원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스웨덴 최고의 사진작가로 유명한 장클로드 아르노다. 이들 부부는 스웨덴 문화 예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저명인사로 손꼽힌다. 그런데 사진작가 장클로드 아르노가 지난해 11월 이른바 미투 파문에 휩쓸렸다. 18명의 여성들이 장클로드 아르노에게 지난 10여 년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던 것이다.

장클로드 아르노의 성폭행이 여러 피해자들에 의해 폭로되자 스웨덴 문화 예술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스웨덴 문화 예술계에서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한림원 종신회원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은 자기 남편을 두둔했고, 한림원 자체에서도 이 사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사태가 더욱 커지자 스웨덴 한림원에서 세 사람의 다른 종신회원들이 프로스텐손의 태도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종신회원직 해임을 한림원 사무국에 정식으로 요구한다. 게다가 프로스텐손이 노벨상 수상자를 사전에 유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러나 한림원에서는 이 요구가 부당하다면서 모두 무시해 버린다. 이렇게 문제가 뒤엉키게 되자 해당 종신회원들이 사무국의 처사에 반발하여 한림원을 집단 사직하기에 이르게 된다.

한림원 내부의 갈등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여성 성폭행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게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그리고 결국 프로스텐손도 사퇴하게 된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금년도 노벨문학상의 심사 중단(?)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벨재단에서도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을 시상하는 기관으로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조치들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대로 올해 10월에는 서점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시행되었는데 모두 110명의 저명한 문인들이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1914, 1918, 1935, 모두 세 번이다. 당시 노벨재단의 공식 성명은 마땅한 수상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이던 1940년부터 4년 동안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 권위를 지켜온 노벨문학상이 대상작을 선정하고 시상하는 기관의 내부 문제로 수상작을 내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노벨문학상의 큰 상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내년에 두 사람의 수상자를 낸다고 하니 내년의 노벨문학상에 호기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물망에 올랐던 문인들도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를 가져봄 직하다. 일본의 문학 애호가들이 벌써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흥분하고 있다는 토막소식도 전해진다.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에도 그렇게 거론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노벨문학상은 세계문학의 꽃이다. 물론 그 자체가 문학의 최고 가치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는 아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된다는 것은 세계문학의 무대에서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한다. 물론 세계 각국의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서 모든 독자에게 호감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적어도 2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힌다면 그 문학인은 자신의 문학작품으로 세계의 무대에 서 있게 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중요 작품 서너 편 정도가 이미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런 작가는 스스로 자신을 노벨문학상의 후보자로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운데 우크라이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프랑스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등은 이미 그들의 대표작들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꾸준히 읽혀 왔다. 한국어로 번역 소개될 정도라면 당연히 세계적인 작가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벨문학상은 매년 생존해 있는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그 수상작을 선정한다.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심사 과정이나 후보자들에 대해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 이외에 누가 후보에 올랐는지 어떤 심사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수상자가 발표 된 후 50년간 심사 내용에 대한 모든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노벨재단의 문서보관소에 1967년까지의 노벨문학상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가 모두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물론 그 문서들 속에서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다. 1967년까지는 단 한 번도 한국문학 작품이 심사대상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일본문학의 경우 1958년에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작가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1965)와 시인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郎, 1894-1982)가 후보로 추천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1960년에도 후보군에 포함되었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1961, 1963년 연속으로 그 이름이 후보군에 오른다. 1963년에는 소설 금각사(金閣寺)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새롭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해 미사마 유키오는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의 나이가 40이 되기도 전의 이야기다. 미시마 유키오는 1965년에도 설국(雪國)을 쓴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다. 1967년에도 두 사람이 동시에 후보에 올랐다. 그러다가 1968년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후보에 오른지 8년만에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자살함으로써 후보군에서 벗어났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를 보면 110명의 수상자 가운데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1927년 수상)도 있고, 영국의 철학자 러셀(1950년 수상)도 끼어 있다. 소설가가 절반이 넘고 시인 가운데 수상자는 34명이다. 그런데 수상 시인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가 서구 언어권에 속해 있다. 소설의 경우에는 비서구 언어권의 작가도 여럿이 수상자가 되었는데 시인이 번역을 통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된 예는 없다. 인도의 시인 타골은 1913년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는데 그는 영어와 벵골어로 시를 썼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는 소설 정글북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키플링(J. Rudyard Kipling, 1865-1936)이다. 그는 1907년에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얻었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들이 평균적으로 60대 중반에 상을 받았다는 통계도 있는데, 키플링의 수상은 약관의 나이에 이루어낸 업적임을 알 수 있다.

노벨문학상은 시상식에서 수상자 이외의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누가 그 해에 후보자로 부각되었는지도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잡음도 없어지고 모든 관심이 수상자에게만 집중되는 것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에 임박하여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후보자는 영국의 도박사들이 선정한 몇몇 문인들의 명단에 불과하다. 전 세계 문학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인의 이름이 그 명단에 오르내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박사들이 점치는 사람 가운데 수상자가 된 경우는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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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연간 80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곳에 한국관이 개관된 것은 2007년 6월의 일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개별 국가 전시실로는 처음으로 한국관이 개설되었으니, 당시 한국 문화계에 커다란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중요 언론에서는 한국관이 영구 전시실로 운영될 것이라면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아시아 문화연구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한국 문화유산 프로젝트(Korean Heritage Project)’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물관 측에 이 사업을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한국관 개관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25만 달러를 지원했고, 3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한국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한국관에는 한국의 역사와 생활을 주제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한국의 전통 도예’ ‘조상 숭배’ ‘한국의 전통 혼례’ ‘한글은 한국 문화의 자랑’ ‘국경을 넘은 저편의 한국’ ‘한국의 현대 미술’ 등 총 7개의 주제로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한국 전통 옹기장인 정윤석 씨의 옹기, 도예가 방철주 씨가 만든 청자 항아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한국 전통 혼례복, 변시지 화백의 그림 등도 이곳에 전시되었다.

한국관 개관 행사에 권 여사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개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이 독립적인 전시공간을 갖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는 축하 메시지도 보냈다. 한국관은 그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미국인과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알리는 작은 창구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 한국관이 올해 하반기에 폐관된다는 소식이다. 개관 당시 10년간의 전시 기간을 약정했기 때문에 올해로 그 계약이 만료된다는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측에서는 이미 2년 전부터 한국관의 폐관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여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사이에 한국관의 폐관을 기정사실화하는 박물관 측의 발표가 있었다. 더구나 한국관의 지속적 운영을 위한 재계약을 논의하는 것조차 이미 늦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사라지게 된 것을 모두 아쉬워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관의 상설 운영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 한국의 정책 당국을 비판하는 여론도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내세울 때마다 민족 문화의 찬란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데에는 우리 모두가 소견도 좁고 역량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은 ‘한류’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케이팝’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드라마를 띄우는 데에 열중이다. 한국의 생활문화 가운데 음식이라든지 패션에 대한 감각은 이미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보편화되고 있다. 매체의 확장과 멀티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적 취향을 강조하는 한국 문화의 지구적 확산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한국관 폐관을 놓고 보면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정책의 틀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는 문화 상품의 소비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것은 문화 산업의 상업적 논리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문화는 이질적인 외국 문화와 만나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면서 조금씩 그 위상을 높이고 영향력도 키워가게 된다. 여기에는 문화의 양식적 특성과 그 정신에 대한 고급한 취향과 선택의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문화가 세계 문화 속에서 조화롭게 그 위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화 산업에 중점을 두었던 한류의 확산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한국 문화가 세계 문화와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여러 단계와 요소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조직해 연계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한국관이 이대로 폐관되고 만다면, 이제 겨우 그 가치를 알리기 시작한 한국 문화가 세계를 향한 중요한 창구 하나를 그대로 잃게 되는 셈이다.(<동아일보>, 201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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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은 1937년 4월 17일 일본 도쿄(東京)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80년이 되었다. 김기림은 이 불행한 천재 시인의 죽음을 보고 ‘주피터 추방’이라며 슬퍼했다. 그리고 이상의 새로운 예술을 올림포스 최고의 신 주피터의 이름으로 다시 호명하고자 했다.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를 쓰고 소설 ‘날개’를 발표한 후 도쿄로의 탈출을 꿈꾸었다.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현해탄(대한해협)의 높은 파도를 넘어 일본으로부터 밀려들어 오는 새로운 문명이 하나의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이광수가 문단의 ‘춘원(春園) 시대’를 열게 된 곳도 도쿄였고, 임화가 무산계급에게 국가가 없다는 신념을 키웠던 곳도 도쿄였다. 

이상은 1936년 늦가을 도쿄로 건너갔고 반년 정도 거기서 머물렀다. 그가 도쿄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다. 도쿄에서의 그의 죽음 또한 그 문학의 마지막 장면을 정리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의문점들을 안고 있다. 

이상은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김기림에게 자신의 도쿄 도착 소식을 전하는 편지에서 ‘기어코 동경(東京) 왔소.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라고 적었다. 이상이 도쿄의 첫인상을 ‘치사스런 데’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1930년대 동양 최고의 도시였던 도쿄를 돌아보면서 식민지 조선의 초라한 시인 이상은 ‘어디를 가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도쿄의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표피적인 서구의 악취(惡臭)’ 때문이었다. 서구 문명의 껍데기를 겨우 흉내 내면서 그것으로 진짜 행세를 하는 꼴이 구역질이 난다고 꼬집기도 했다. 도쿄라는 도시의 비속성(卑俗性)에 대한 이상의 비판적 태도를 본다면, 그의 도쿄 생활은 여기서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상은 제국의 수도 도쿄가 자신이 꿈꾸었던 현대정신의 중심지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서구 문명의 세계를 치사하게도 흉내 내고 있던 도쿄의 ‘모조(模造)된 현대’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쿄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재구성하거나 해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도회의 산책자가 되어 도쿄의 번화가를 거닐면서, 화려한 긴자(銀座)의 거리를 두고 ‘한 개의 그냥 허영 독본(虛榮讀本)’이라고 적었고,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의 해골’이라서 너무 추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대와 세기말의 허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도쿄라는 대도시에 대해 비아냥대었다. 하나의 거울에 또 다른 하나의 거울을 비춰 보듯이 이상이 발견한 이 도쿄의 이미지는 문명의 화려한 꽃이 아니라 그 어슴푸레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상은 새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귀국할 수 없었다. 그는 일본 고등계 형사의 취체(取締)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거동 수상자’라는 이유로 경찰에 검거된 그는 도쿄의 늦겨울 한 달을 차디찬 경찰서 유치장에서 견뎌야 했다. 이 불행한 영혼은 그 육신과 함께 거기서 무참하게도 허물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상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주피터 승천하는 날 예의(禮儀) 없는 사막에는/마리아의 찬양대도 분향도 없었다./길 잃은 별들이 유목민(遊牧民)처럼/허망한 바람을 숨쉬며 떠 댕겼다./허나 노아의 홍수보다 더 진한 밤도/어둠을 뚫고 타는 두 눈동자를 끝내 감기지 못했다.’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을 보면서 ‘주피터 너는 세기(世紀)의 아픈 상처였다’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는 이상의 짧은 생애를 시대고의 희생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김기림이 이상에게 부여한 ‘주피터’라는 이 새로운 이름은 그 예술적 재능에 충분하게 값했다. ‘주피터’라는 이름 그대로 이상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이 되었다!

(<동아일보>, 20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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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가 문단의 화제다. 얼마 전에 보도된 대로 일본에서 초판 130만 부를 찍었다는 뉴스가 놀랍기만 하다. 책 판매가 시작된 첫날 서점마다 독자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작품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에 대한 작품 속의 언급에 일본 우익분자들이 시비를 걸면서 엉뚱한 논란까지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번역 소개되면서부터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87년에 출판된 이 작품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꿈의 상실 속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애절한 사랑을 자유분방한 문체로 그려냈다. 당시 일본 평단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한때 유행하는 대중적 통속소설 작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단의 무관심에도 자기 소설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른바 ‘일본 중심주의’에 빠져들었던 일본 사회의 흐름을 외면한 채 오히려 자신의 소설에서 일본적 특성이라든지 일본의 미학이라든지 하는 요소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글로벌 시대의 작가임을 자처했고,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의 모든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무대를 꾸준히 탐색했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태도와 신화적 요소를 자기 서사의 모티프로 활용하면서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양을 쫓는 모험’ 등의 문제작을 통해 독자층을 넓혀 나갔다. 그의 작품은 모두 한국에 번역 소개되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일본 문단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고, 자신이 추구해온 소설적 이념의 실천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출판계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몇몇 출판사가 국내 판권을 얻으려고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선인세’라는 개념의 판권 계약금이 무려 2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출간되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부터 출판사들의 판권 경쟁으로 선인세가 10억 원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작년 송인서적의 부도 이후 움츠러든 출판계 상황을 놓고 본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큰 출판사들이 벌이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경쟁에 왠지 기분이 씁쓸하고 착잡하다. 

그런데도 이런 출판사의 지나친 상업주의적 행태를 시비하기조차 힘든 것은 우리 소설 문단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단 권력이라는 기형적인 울타리가 작가들을 옥죄고 있다고 서로 헐뜯더니, 문단 내부에서 끊이지 않는 표절 시비가 독자들을 식상하게 했다. 게다가 문인들의 성폭력에 대한 논란에까지 빠져들면서 문단의 활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문학이 기대야 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돈 자랑처럼 보이는 판권 경쟁에 거는 그 엄청난 금액의 일부라도 우리 소설을 위해 투자하는 출판계의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지키면서 꾸준히 글을 쓰도록 적극 지지해줘야만 우리 문단과 출판계가 모두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우리 소설이 지닌 상상력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는 세계의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독자와 출판계가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부러워하며 따라가야 하겠는가.(<동아일보>, 20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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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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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정치

문학칼럼 2017. 2. 15. 04:47 |

‘사내는 우비와 거짓말을 갖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속담이다. 갑작스러운 곤란에 부닥쳤을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이 남자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거짓말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이런 속담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려고 일부러 지어낸 것이니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도 남자한테 거짓말 하나쯤 있어도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무리 처세가 중요해도 거짓까지 용납해서야 될 일인가.

기독교 십계명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 진리이신 하나님은 거짓이 없다. 거짓말은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마귀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부처님의 도리에도 거짓은 용납하지 않으며, 공자의 말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남을 속이는 말은 모두 허언이며, 그것이 곧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윤리학에서도 거짓말에 대한 판단은 대개 엄격하다.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짓말은 사실과 다른 허위 진술이라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죄로 취급한다. 말을 바르게 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책무다. 거짓말을 하려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꾸며서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남을 속이기 위해 먼저 자신을 속여야 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꾸중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꾸민다. 어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자주 한다. 남녀 간의 연애에서 사랑을 구걸할 경우 쉽게 거짓말을 동원한다. 친구들 사이에 실없는 거짓말로 농을 걸 때도 많다. 경쟁이 치열한 입사시험을 보면서 면접관 앞에서 누구보다 잘 보이기 위해 자기 능력을 과장하여 말하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은 남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것은 아니므로 그 진위를 따질 필요가 없이 대개 그대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해악을 저지르는 거짓말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거짓말이 가장 크게 판을 치는 곳이 정치다. 정치라는 한자의 ‘정(政)’은 ‘바르게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권력을 잡으면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데에만 골몰하지 ‘바르게’ 하려 들지 않는다. 거짓말로 시작한 정치는 권력의 힘에 맛들이면서 더욱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자기 허물은 모두 거짓으로 감추고, 자신이 저질러 놓은 비리와 부정을 일절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은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다. 스스로 불리해지면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하는데, 요란하게 은퇴했던 정치인치고 다시 정치판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틈에 머리를 내밀고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면서 나댄다.

올해는 큰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꾸며내고 거짓 선동을 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불과 4년 전 선거 때 정치인들이 내세웠던 거짓말을 착한 국민은 어느새 대부분 잊어버렸다. 대학생들을 향해 모두가 ‘반값 등록금’을 외쳤는데 정치인들의 그 허언을 누구도 다시 따지는 사람이 없다. 선거 때마다 생색을 냈던 ‘반값 아파트’는 또 얼마나 서민들에게 황당한 거짓말이었는가. 일자리 몇십만 개를 만들겠다고 듣기 좋게 주장하지만 저들이 국민 앞에서 무슨 거짓을 다시 꾸밀지 알 수가 없다.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는 정치판에 거짓말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치인의 거짓말에 둔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에서의 거짓 선동과 거짓 공약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거짓말에 너그러운 국민의 의식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동아일보>, 1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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