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아버지  / 최명길

밤 이슥토록 밭도랑을 파내면서

앞드로 논물 대던 날 밤 그 기억의 파편을

한 삽 퍼내 올렸다.

 

가물 타 논바닥이 물을 달라고 쩍

벌어지고야 말던 날

나는 괭이를 들러 메고 윗논 물꼬를 땄다.

그 윗논 물꼬를 따고

그 윗논 물꼬도 따고

또 그 윗논 물꼬를 따고

남의 물꼬를 따고 따

두어 시간이나 따고 올라가 마침내

물 한 줄기가 겨우 우리 논 물꼬에 닿으며

멍석 한 닢만큼 물자리를 폈을 때

논바닥이 물 먹는 소리를 꼬르륵 꼬르륵

냈을 때

 

아버지는 마른 부시를 그었다.

부싯돌과 부시가 부딪쳐 튀는 불꽃이

섬들 버덩 어둠을 건너뛰며 번쩍여

마치 별을 데리고 노는 듯

도깨비를 데리고 노는 듯 했다.

 

평생 지게 등짐 무게에 짓눌려

다리뼈가 바깥으로 휘어 튕겨져 나갔던

농사꾼 아버지

 

 

 

강릉 노파 생각  

야야 네 몰골이 매련읎다.

패래서 빼깡챙이가 됐다이

 

우연히 고향 마실에 들렸다가

어른을 만나 이런 말을 듣노라면

나 참 달부 어여워서 꼭 가랑낭그뗑이 같은

벌거지를 씹는 듯하다.

 

뙛에서 시집 와 구매 비얄에 살던 그 새댁은

얼굴이 곱사라했으나 꼬불아져

몸을 오부뎅이로 질목쟁이 돌방구에 기댄 채

걱정이 죄련찮다.

 

올해는 날쌔가 노박 사무루워서

논다랑이에 복새가 들고 피가 개락이라

입쌀 구경 하기는 다 틀렸다.

 

사랑모텡이 그 참꽃낭근 별탈 없던가

 

하지만 몇 년 전 그 어른 가시고 나자

마실에는 이제 나를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다.

천지 사이가 텅 비었다.

 

그래 어픈 가. 어여 살페가우야

자가 왜 저닷타게 패랬지

*가랑낭그뗑이: 마른 갈참나뭇가지

 

약력 : 1940년 강릉 출생. 1975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화접사』『풀피리 하나만으로』『반만 울리는 피리』『은자, 물을 건너다』『콧구멍 없는 소』『하늘 불탱등이 있고 명상시집바람 속의 작은 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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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드기라고 하는 것은 버드나무인데요 버드나무/버드나무 물오를 때 살살 손으로 이리 틀면/그게 물이 올라가지고/나무는 나무대로 껍데기는 껍데기대로/이리 틀어가지고 인제/껍데기는 껍데기대로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나오면/칼로 잘라가지고 인제/겉껍데기는 벗겨버리고 속껍데기가 또 있거든/ 속껍데기 그것을 이렇게 불면 호드기가 불리고/피리라 하는 것은 풀잎으로 부는 것이 피리고/ 피리라 하는 것은 잘 부는 사람은 뭐/무엇이라도 입에 대면 뭐 다 소리가 나고/못 부는 사람은 그 피리 퉁소는 공부 퉁소요/피리는 팔자 팔자있다 하는 거야. (2009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서 채록된 경남지역어 조사보고서중에서)

 

 

아래 승기, 곁에 성기

경상도 사람에겐

단모음 으/어 구별이 없는데

내 친구 김승기

아무리 자기 이름 승기라고

성기가 아니라 승기라 해도

듣는 귀도 성기로 듣고

말하는 입도 성기라 따라하는데

이 친구 그때마다,

곁에 성이 아니라 아래 승이라고

곁에 성기가 아니라

아래 승기라고 강조하는데

어느 날 그 말 듣고 있던

불콰한 형님 왈

성기라 하면 좆인데

그 좆이 아래에 달렸지

곁에 달린 좆이 어디 있나

그런 좆 있으면 구경 좀 하자고

불호령 내렸는데

그래서 김승기는

여전히 김성기인데.

 

약력 : 경남 진해 사람. 1984<실천문학> 신인상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시 부문), 이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 경향신문, 문화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 경남대학교 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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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카름 : 서동네

 

 

젤라의 꽃 6

내 수호 성인

프란치스꼬

가신 날

 

책상에

*고장 없다

 

나중에

떼쓰니

 

**물애기,

물애기,

라고

놀린다

  

*

**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몸이 굳지 않은 아이

 

약력 : 1987<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섬들의 오랜 꿈』『남양여인숙』『뭉게구름을 뭉개고』『올레 끝. <작은 앗 채송화> 동인. 현재 제주도 신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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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 

우리 동네 성만 씨네 산다랑치논에, 그 귀퉁이의 둠벙에, 그 옆 두엄자리의 쇠지랑물 흘러든 둠벙에, 세상에, 원 세상에, 통통통 살 밴 누런 미꾸리들이, 어른 손꾸락만한 미꾸리들이 득시글벅시글 난리더랑께 

그걸 본 가슴팍 벌떡거리는 몇몇이, 요것이 뭣이당가, 요것이 뭣이당가, 농약물 안 흘러든 자리라서 그런가 보다며 너도 나도 뛰어들어, 첨벙첨벙 반나절 요량을 건지니께, 양동이 양동이로 두 양동이였것다!

그 소식을 듣곤, 동네 아낙들이 성만 씨네로 달려오는디, 누군 고사리를 삶아오고 실가리를 추려오고, 누군 들깨즙을 내오고 태양초물을 갈아오고, 누군 육쪽마늘에 다홍고추를 다져오고, 잰피가리에 참기름에 사골에, 넣을 것은 다 넣게 갖고 와선, 가마솥 한가득 붓곤 칙칙폭폭 칙칙폭폭, 미꾸리 뼈 추릴 새도 없이, 호와지게 끓여내니께,

그 벌건, 그 걸쭉한, 그 땀벅벅 나는, 그 입에 쩍쩍 붙는 추어탕으로 尙齒마당이 열렸는디, 그 허리가 평생 엎드렸던 논두렁으로 휜 샛터집 영감도, 그 무르팍이 자갈밭에 삽날 부딪는 소리를 내는 대추나무집 할매도, 그 눈빛이 한번 빠지면 도리 없던 수렁 논빛을 띤 영대 씨와, 그 기침이 마르고 마른 논에 먼지같이 밭은 보성댁도 내남없이, 한 그릇 두 양푼씩을 거침없이 비워내고 봉께

봉두난발에, 젓국 냄새에, 너시에, 반편이로 삭은 사람들이, 세상에, 원 세상에, 그 어깨가 눈 비 오고 바람 치는 날을 닮아 버린 그 어깨가 풀리고, 그 핏줄이 평생 울분과 폭폭증으로 맥혀 버린 그 핏줄이 풀리고, 그 온몸이 이젠 쓰러지고 떠나 버린 폐가로 흔들거리는 그 온몸이 풀리는지, 모다들 면상이 발그작작, 거기에 쐬주도 몇 잔 걸친게 더더욱 발그작작해서는, 마당가상에 아직 못 따 낸 홍시알들로 밝았는디,

때마침 안방 전축에선,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다 허니, 한번 놀아 보장께, 기필코 놀아 보장께, 누군가 추어 대자, 모다들 박수 치고 보릿대춤 추고 노래 부르고 또 쐬주 마심서, 아 글쎄 늦가을 노루꼬리만한 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한바탕 잘 놀다봉께, 아 글쎄, 청천하늘의 수만 별들도 퉁방울만한 눈물 떼를 글썽이며 귀경 한번 잘 하더랑께!

 

약력 :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실천문학>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 날랜 사랑』『쪽빛 문장외 다수. 신동엽창작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계간 <문학들> 기획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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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나! : 저리 가!(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치나랑게! : 저리 가라니까!(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흉작凶作

어이서* 푸작나무*

뒤집어 말리는 소리

그라고*, 가랑잎 긁어대는

갈쿠질* 소리

갑자기 밀려온 추위에

구들장 온기마저

죄다* 사라진 탓이다

다 저녁 때

기뚜래미* 울음소리마저도

고뿔*에 든 것 같다

모탱이*에 내동댕이쳐진

부시땅*이라도 밀어 넣고

아궁이에 풀무질*을 해댈까

왼죙일* 치질해 보아도

남은 나락 별반 없고

봉창*마저 텅 비어버린

굶품한 이 가을

굴타리먹힌* 감 하나

푸지게* 먹을 수 없구나

 

*어이서 : 어디에서(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푸작나무 : 산에서 땔감으로 베어온 잔 나뭇가지와 억새풀 등(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그라고 : 그리고(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갈쿠질 : 갈퀴질(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죄다 : 모조리, 모두 다(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고뿔 : 감기(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기뚜래미 : 귀뚜라미(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보탱이 : 모퉁이(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부시땅 : 부지깽이(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왼죙일 : 온 종일(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봉창 : 호주머니(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푸지다 : 매우 많고 넉넉하다

*굴타리먹다 : 벌레 등이 파먹다

 

약력 : 1950년 충남 서천 출생. 1978[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편안한 흔들림과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등 다수.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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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이곳 공주에서 열게 된 여섯 번째의 문학콘서트를 사투리로 시 쓰기라는 특이한 제목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택하게 된 것은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고장에서 시를 쓰며 살아온 나태주 시인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1971서울신문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나 시인은 훌륭한 시는 시인의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시라고 늘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와 합치하여 이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 참된 시인의 작업이라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적 태도를 통해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삶의 정경이라든지 인정과 사랑의 깊은 의미를 자신의 언어로 노래하였습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력과 깊은 사색은 모두 그 질박한 언어를 통해 풍부한 시적 형상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주선해 주신 나태주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나태주 시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인 다섯 분을 이곳 공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분들께 자기 지역의 사투리를 시어로 활용한 시를 한번 써 주십사는 당부를 드렸지요. 여기 자료집에 다섯 분의 시가 나란히 실렸습니다. 이 시들을 함께 즐기면서 오늘의 주제인 사투리로 시쓰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여기서 먼저 박목월의 시 이별가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 시에서 경상도 사투리 뭐락카노, 뭐락카노의 반복을 통해 거두고 있는 정서의 깊이와 그 확대는 특기할 만합니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경상도 사투리의 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뭐락카노라는 이 한마디 말은 매우 복잡한 내면적 정서의 표출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당위적인 것에 대한 반문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선행하는 진술 자체에 대한 일종의 자기 확인법으로도 쓰입니다. 박목월은 이 한 마디의 말을 통해 토착어의 시적 기능을 절묘하게도 살려내고 있습니다. 자기 지역의 특징적인 방언 한 마디를 골라 이토록 가슴 저미는 시어로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토속어의 시적 활용이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1930년대의 시인 백석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백석의 시에 그려지는 시적 정황과 그것을 묘사하고 있는 언어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세 벌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 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도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 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시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백석의 시 가운데 민중들의 소박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칠월 백중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의 사실성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각각의 시행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듯한 서술적 효과를 드러내도록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중날 약물터에 놀이를 나가는 새악시들의 모습을 그 옷치레부터 수선스럽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넘고 넘어 약물터에 모여든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대상들이 백중날 약물터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시적 공간 속으로 집약되면서 시적 감흥도 고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서적 고양 상태에서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모두가 후줄근하게 젖지만, 오히려 마음은 차분하게 다가올 살림살이를 생각하면서 붕가집으로 향합니다. 이러한 시적 진술을 통해 시인은 감각적인 시적 심상들을 공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동시에 그 공간 자체를 한 폭의 풍경으로 꾸며내고 있습니다. 백석의 시는 이야기조의 서술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배적 인상을 포착해내는 언어의 감각성을 이처럼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앞의 시 칠월 백중에서 처럼, 백석은 자신이 설정하고 있는 시적 공간에 자신의 말과 시적 화자의 말을 동시에 서로 다른 관점과 방향으로 펼쳐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적 자아로서의 시인의 입장을 감추고자 하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백석의 시는 시적 화자의 일관된 언어 체계와 미묘하게 경계를 이루는 시인 자신의 토속적 언어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언어들은 규범적인 표준어와 지역적인 방언 사이의 대화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기와 다른 언어 체계를 지니고 있는 시적 화자와 대화적 공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매우 치밀한 전략과 언어적 직관이 필요합니다. 시인 백석의 문학적 재질이 바로 여기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시적 정서도 그 스스로를 소리로 드러내게끔 하지 못한다면, 그 시적 묘사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서의 세계는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 인상으로 묘사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두 편의 시를 예롤 들어 보았습니다만, 시에서 토속어 또는 사투리라는 것이 가지는 시적 담론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한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 시 속에서 사투리가 시적 담론의 체계를 형성하는 데에 가장 기능적인 것은 일차적으로 어휘의 변별성에서 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휘론적 차원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휘의 다양한 활용 형태의 변화에서 특징이 드러납니다. 낱낱의 어휘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의미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그 정서적인 요소를 최대한 확대하고 있는 것이 지역의 사투리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문체론적인 특징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을 간과해버림으로써 사투리의 지역적 특성과 개인적 언어의 감각을 무시해버리는 일도 생깁니다. 사투리와 표준어의 간격으로 인하여 시적 언어의 해석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이육사의 <광야(曠野)>를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시의 첫 연에서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는 구절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사용된 어데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라고 생각합니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어데라는 말은 표준어의 어디와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이 말은 뒤에 이어지는 시적 진술에 대한 강한 부정과 의문을 표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의 구절은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태고의 적막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시를 해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평자들은 그러한 사투리의 특징을 외면하고 표준어 어디로 이 구절을 읽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천지의 개벽을 알리듯 들려오는 것으로 아주 엉뚱하게 해석해버리고 있습니다. ‘어데/어디라는 사투리와 표준어의 간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생겨난 일입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잠길테요

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날

떠러져누은 꼿닙마저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쳐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슬픔의 봄을

 

이 시의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는 구절을 주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쓰인 하냥이라는 시어도 사투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이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례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이 구절입니다. 금성출판사 판 <<국어대사전>>에도 한결같이 줄곧이라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으며, 역시 그 용례로 이 싯구를 들고 있지요. 대부분의 교과서도 모두 이같은 풀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냥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용법에서 과 같이 시간을 표시하는 말로 쓰이는 예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충청도 지방과 호남 지방에서 하냥이라는 말이 쓰이는 예로 ‘(1) 나하고 하냥 가자. (2) 온 식구들이 모두 하냥 사는 것이 소원이다.’ 등과 같은 말을 들 수 있지요. 이러한 예로 본다면 하냥함께 더불어또는 같이 함께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삼백 여순날 함께 섭섭해 우옵내다로 읽어야만 합니다. 시적 주체로서의 <>는 떨어지는 모란을 보고 그 모란과 <하냥>(함께) 다시 모란이 피어날 때까지 울면서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기다리는 정서><잃어버린 설움>을 절묘하게 대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투리는 이렇게 일상적인 개인의 감각과 지역적 정서를 서로 밀착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외면하면 시의 내적 공간이 협소해집니다.

저는 우리 시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언어 감각과 지역적 정서를 절묘하게 결합시킬 수 있는 시어로서의 사투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투리는 그동안 표준어 중심의 국어교육의 현장에서 모두 밀려났고, 이제는 매체 환경의 변화를 따라 언어의 지역적 편차가 사라지면서 모두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문학의 영역에서만 사투리가 사투리로서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작은 자리를 남겨두고 있지요. 시를 통한 사투리의 부활이라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시어로서의 사투리의 가능성을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자리에 나오시게 될 다섯 분의 시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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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선생님 인사 

 

 

참여시인들과 한 컷

 

행사 후 기념 촬영

 

초대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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