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자유

문학칼럼 2020. 7. 31. 19:45 |

김수영과 노고지리와 자유

 

김수영(1921-1968)은 현실 참여 문제를 시와 행동을 통해 실천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전후시단에서 추구했던 시적 작업을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을 통해 정리한 뒤에 자신의 시적 지향에 대한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전후 시단에서 후기 모더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고 활동해 온 그는 바로 그 모더니즘이 빠져든 추상성을 벗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실험성과 서정성의 특이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가 다시 발견한 것은 개인의 삶과 현실 그 자체의 중요성이다.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면서 시여 침을 뱉어라(1968)를 비롯한 일련의 산문으로 자신의 시적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그가 강조한 시의 현실 참여 문제는 자유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국문화의 다양성과 활력을 깨치는 무서운 폭력을 정치적 자유의 결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의 참뜻을 4월 혁명을 통해 현실적으로 체득했던 그는 그 혁명이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짙은 회의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가 내뱉은 야유와 욕설과 악담은 혁명의 좌절을 초래한 소시민들의 소극성을 겨냥한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 풍자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김수영의 반시론(1968)은 이러한 자기 풍자의 극단적인 산문적 진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애를 써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책이 선두가 아니다. 작품이 선두다. 시라는 선취자가 없으면, 그 뒤의 사색의 행렬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고생을 하든지 간에 시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책이 그 뒤의 정리를 하고 나의 시의 위치를 선사해 준다. 정신에 여유가 생기면, 정신이 살이 찌면 목의 심줄에 경화증이 생긴다.

이런 때는 고생이란 고생을 다 써 먹었을 때다 말하자면 수단으로서의 고생을 다 써먹었을 때다. 하는 수 없이 경화증에 걸린 채로 시를 썼다. 배부른 시다. 그것이 라디오라는 작품이었다. 그후 먼지, , 美人등의 3편을 썼는데, 아직도 경화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만성 경화증인 모양이다. 이대로 나가면 부르좌의 손색없는 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전에는 무엇을 쓸 때 옆에서 식구들이 누구든지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신경질을 부렸는데, 요즘은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도 않고, 오히려 훼방을 좀 놀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약이 되고, 작품에 뜻하지 않는 구명대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잡음은 인간적이다. 그것은 너그러운 폭을 준다. 잘못하면 몰살을 당할 우려가 있지만, 잡음에 몰살을 당할 만한 시는 낳지 않아도 후회가 안 될것 같다.

                                                                                                               반시론

반시론에서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시를 진정으로 시답게 생각하는 김수영의 시적 태도이다. 시를 시답게 생각한다는 것은, 시를 시 이상의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시가 포괄할 수 있는 삶의 의미와 그 속성을 시를 떠나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과도 통한다. 그러기에 그는 시라는 것이 말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동시에 온 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시론은 지극히 사적인 자기 고백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속에 시 쓰기의 방법과 그 정신에 대한 분명한 지향을 보여준다. 김수영이 지적하고 있듯이 정신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삶에 대한 안이한 태도와 연결되고, 결국 목의 심줄에 경화증을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그 정신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자극할 수 있는 시정신의 새로움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삶에 길들여지고 습관에 주저앉을 때 인간의 정신활동은 정지되고, 모든 문화는 그 발전과 변화를 중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물질적인 삶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습관성에의 함몰은, 인간의 비인간화를 유도하는 결정적인 요건이 됨은 물론이다. 자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의 상실이 정신의 여유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은, 확실히 현실적인 문학의 풍토에서 다시한번 음미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잡음(雜音)’의 현실과 그 잡음을 감당할 수 있는 시의 의미는 일상의 현실 속에 서 있는 시인의 태도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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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은 자유의 개념을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4.19 학생혁명이 일어난 뒤 동아일보(1960. 7. 7)에 발표된 것으로 시선집 󰡔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에 수록되어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
왜 고독(孤獨)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이 시는 전체 텍스트가 3연으로 구분되어 있다. 하늘 높이 치솟아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의 모습과 함께 자유, 혁명, 고독, 피 등의 관념적 시어가 등장한다. 시의 텍스트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노고지리다. 종다리라고 부르는 이 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그런데 봄철 번식기가 되면 종다리의 수컷은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라서는 공중에서 날개를 심하게 퍼덕이며 소리내어 지저귀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그 울음소리가 멀리까지 퍼진다. 보리가 파랗게 자라나는 봄날 고향 시골에서 많이 들었던 소리다. 암컷을 부르기 위한 소리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보다는 하늘로 올라서 자기 영토를 표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이란다.

시의 1연에서 화자는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 부러워하던 /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종다리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두고 어느 시인이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고 노래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그렇게 말한 시인의 말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는 말을 시적 화자는 수긍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시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의 텍스트의 진술을 놓고 본다면 화자가 수정하고자 하는 것은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는 내용이다. 노고지리가 봄날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모습은 그 자체가 하늘을 제압하는 듯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화자의 생각으로는 노고지리에게 그것이 자유로움이 아니다. 노고지리는 멀리 암컷을 불러야 하고 자기가 터잡고 있는 영역을 지켜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노고지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존을 위해 가장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적 화자가 왜 어느 시인의 말을 수정해야 한다고 진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연은 전체 10행으로 이어져 있는데 시행의 배열 자체가 도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라는 구절은 뒤로 이어지는 시적 진술 내용 전체를 목적어로 삼고 있다. 여기서 자유를 위해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란 자유를 쟁취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투쟁하며 고뇌해본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므로 비상은 정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행동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자유를 위한 적극적인 자기 투여를 비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면 이 시를 발표할 무렵의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는 4월 학생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약 두 달 전도가 지난 뒤에 발표된 것이다. 모두가 4월 혁명의 성공에 고무되어 있던 시기에 시인은 혁명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과 자세를 촉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노고지리가 공중에 떠서 노래하고 있는 것은 자유로움에 대한 찬탄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를 요구하고 지켜 나가기 위한 절규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환희가 아니라 고통이 수반된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은 자유를 거저 얻어낼 수 없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쟁과 피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를 지켜나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이 요청된다. 혁명이 고독하는 말은 혁명에 수반되어야 할 철저한 자기 인식과 올곧은 자세와 연결된다. 혁명을 위해서는 좌우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앞뒤를 고려해서도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어렵다. 철저하게 과거와 단절하고 엄격하게 현실적 관계로부터 탈피해야만 된다. 그러므로 혁명은 외로운 결단일 수밖에 없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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