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

 

 

산도화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이 해방 이후 출간한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은 서울 영웅출판사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발간했는데, 시집의 판형은 B6판이며 전체 126면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집의 첫머리에는 시인 박목월 자신이 쓴 해제가 머리말처럼 실려 있다. 본문의 말미에는 청록파의 조지훈(趙芝薰)과 박두진(朴斗鎭)이 쓴 발문이 붙어 있다. 오랜 문우였던 시인 황금찬(黃錦燦)도 이 시집에 발문이 썼다. 조지훈은 발문에서 일제 말기 <문장> 지의 추천을 받은 후 두 사람이 경주 부근 건천에서 처음 만나 문학적 동지로서 함께 해온 사연을 감동적으로 적어놓고 있다.

박목월은 해방 직후 자신의 고향인 경주를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화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으며, 1946년 결성된 한국청년문학가협회에 김동리 조지훈 등과 함께 참여했고 한국문인협회 출범에도 참여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한때 출판사 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고, 잡지 아동(1946)·동화(1947)·여학생(1949) 등을 편집, 간행하면서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다. 시집 산도화는 이와 같은 해방 이후 문단 활동의 정리작업에 해당한다.

시집 산도화에는 시인이 해방 전후에 쓴 총 35편의 시가 전체 6부로 나누어져 실려 있다. 1부에는 구강산(九江山) 1, 한석산(寒石山), 산도화 1. 2. 38, 2부에는 산색(山色),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6, 3부에는 모란여정(牡丹餘情), 여운(餘韻), 해으름6, 4부에는 구름밭에서, 산이 날 에워싸고6, 5부에는 임에게 15, 6부에는 월야(月夜)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일상적 언어를 통해 산, 바위, , 꽃 등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해내고 있으며, 절제된 감정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시적 이미지의 공간적 배치를 통한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민요풍에 가까운 자연스런 리듬을 함께 살려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2

 

조지훈이 쓴 이 시집의 발문에는 박목월과 조지훈이 처음 만나게 된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두 시인의 문학청년 시절의 풋풋한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아름답다.

 

내가 목월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른 봄이었다. 그 전에 나는 절간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었고 문장폐간호를 받았다. 그해 겨울 과음한 탓으로 빈사의 몸으로 서울에 와서 이른바 국민문학이 발간된 것을 보았고 몇 달 누워 있다가 이듬해 봄에 조선어학회의 큰사전편찬을 돕고 있을 때였다. 일본서 돌아오는 초면의 시인이 하나 화동에 있는 조선어학회를 찾아와서 오는 길에 목월을 만나고 왔다는 말을 전했었다. 그때까지 경주를 못 보았을 뿐 아니라 겸하여 목월도 만나고 싶고 해서 나는 그 이튿날 목월에게 편지를 썼다. 무슨 말을 썼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매우 긴 편지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뒤에 목월에게서 답장이 왔었다. 그 짧으면서도 면면한 정회가 서려 있는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주 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 속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이 짧은 글을 받고 나는 이내 전보를 쳤었다.                                                                                                                  (조지훈, 산도화 발문)

 

조지훈이 목월을 찾아 경주로 내려오던 날 아침부터 하늘에서는 봄비가 분분하게 흩뿌렸다. 목월은 지훈을 만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일찌감치 건천역으로 나가 지훈을 기다렸다.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융조합 서기로 일하고 있던 그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시를 쓴댔자 그것을 발표할 길이 없었다. 모든 잡지와 신문이 폐간 당한 터라서 그는 중앙문단에서 제대로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채 시골 생활에 빠져 있었다. 그가 경주에서 가끔 만났던 문인은 당시 소설가로 이름이 나 있던 김동리였다. 고향으로 내려와 은거하고 있던 김동리는 갓 시인이 된 박목월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문우였다. 그런데 낯모르는 시인 조지훈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리고 경주로 내려와 그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목월은 조지훈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와의 만남을 소중한 추억으로 회상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경주에 있는 나에게 하루는 편지가 왔다. 봄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처럼 멋이 있으면서 단아한 지훈의 필체로 넉 장 정도의 긴 편지였다. 시인다운 우아한 사연의 그 편지를 6.25 사변 때 잃어버린 것이 내게는 두고두고 한이었다. 내가 회답을 보낸 얼마 후 그는 나를 찾아 경주로 왔다. 긴 머리가 밤물결처럼 출렁거리던 그의 첫 인상은 시인이기보다는 귀공자 같았다. 티 없이 희고 맑은 이마, 그 서글서글한 눈- 나는 서울에서 온 시우를 맞아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지훈을 애도하며)

 

그날 해질 무렵 건천역에 기차가 들어섰다. 박목월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지훈이 자신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전날 밤 한지에 박목월이라고 자기 이름을 써 두었다. 그리고 역으로 나가면서 그 종이를 챙겼다. 그는 역 앞에서 자기 이름을 쓴 한지를 깃대처럼 쳐들고는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시골 아낙네 서넛과 촌로 두엇이 플랫 홈에 내렸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지훈이 천천히 기차에서 내려섰다. 목월은 자신이 들고 서 있던 깃대를 흔들 필요도 없이 단박에 시인 조지훈을 알아챘다. 긴 머리를 날리면서 기차에서 내린 지훈은 저녁 무렵 설핏한 기운 속에서도 훤칠한 키에 수려한 면모가 돋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 안았다. 그렇게 이곳 건천역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암흑의 시대를 절망 속에서 살아가던 젊은 두 시인은 폐허의 고도 경주의 여사(旅舍)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문학 이야기로 시작하여 둘의 대화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갔다. 조지훈은 시인으로서의 존재를 이렇게 따뜻하게 지키고자 하는 목월이 고마웠다.

 

3

 

시집 산도화표제작인 산도화 1은 박목월의 초기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절약된 언어와 간결한 형식, 선명한 이미지의 공간적 배치 등은 박목월의 초기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주관적 감정의 표현을 배제하고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방법은 정지용 이후의 현대시의 경향과 맥락을 같이한다. 시인 자신은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적료의 풍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세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보랏빛의 석산(石山)과 대비되는 산도화의 색깔이라든지 옥 같은 물빛 등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산도화, 봄눈 녹아 흘러내리는 물, 계곡에 나타난 암사슴의 모습 등을 통해 자연 그 자체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도화 1

이 작품에서 시의 제재가 된 산도화는 한국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복숭아꽃이다. 일반에서는 개복숭아꽃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봄에 연분홍의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시적 진술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구강산이라는 산은 실제로 존재하는 산은 아니다. 시인 자신이 상상적으로 구상해 놓은 마음속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음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산도화사슴이다. 보라빛을 띠고 있는 구강산 기슭에 산복숭아꽃이 두어 송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사슴 한 마리가 봄눈 녹아내리는 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다. 이런 장면은 상상적으로 가능하다.

이 시의 진술은 서경(敍景)을 위주로 하고 있다. 섬세한 감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와 같은 경치를 실제로 찾아볼 수는 없다. 시적 화자는 일체의 주관적 감정을 절제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보랏빛의 산, 두어 송이 벌어진 산도화, 산골 개울가의 암사슴은 인간의 세계와는 떨어져 있는 아늑한 자연의 비경(秘境)이다. 디테일에 대한 과감한 생략은 간결한 언어 표현을 통해 확인된다. 시적 공간에 오롯하게 남겨진 것이 산과 산도화와 사슴뿐이니, 봄이 찾아온 자연의 풍경치고는 모든 사물이 너무 단순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이 단순성이 추상(抽象)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구강산은 하나의 신비로운 이상향처럼 시를 통해 살아난다.

어떤 이는 박목월의 초기 시들이 마치 민화(民畵) 속의 장면을 그려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짤막한 어구로 이어지는 시적 진술에서 석산(石山)의 보랏빛과 산도화의 색깔, 물빛 등은 선명한 색상의 대비를 이룬다. 1, 2연은 보랏빛 석산과 연분홍의 산복숭아꽃이 조화를 이룬다. 시적 대상 자체는 아늑함 속에서 정적(靜的)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3, 4연은 그 느낌이 약간 다르다. 눈이 녹아내리는 옥빛 개울물은 작지만 동적(動的)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리고 거기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암사슴의 모습이 포착된다. 시적 텍스트의 전반부 1, 2연이 보여주는 정적인 느낌과 3, 4연에서 확인되는 개울물의 작은 움직임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 셈이다.

박목월의 초기 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도화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시적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것은 아니지만 산도화의 풍경은 시인이 동경하고 있는 이상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산도화 2산도화 3을 함께 읽어보면 간결한 언어가 만들어내는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표현의 시적 성취를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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