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찾은 김기림의 시 5

 

김기림이 해방 직후에 발표한 씨 5편을 발굴하여 공개한다. 기존의 자료에 실려 있지 않은 작품들이다. 필자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김기림전집 전4](민음사, 2019년 출간 예정)의 새로운 출간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 찾은 작품들이다.

김기림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에는 고향 근처인 함경북도 경성 소재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영어를 가르쳤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서는 임화, 이태준, 김남천, 이원조 등이 주도했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가담하여 새로운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2월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흡수하여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면서 좌익문단의 대표 조직으로 등장했다. 김기림은 이 단체의 중앙집행위원 및 시부 위원장이 되었고,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지부 위원장을 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해 9월 경성대학(국립 서울대학교 전신)에서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1948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까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던 상당수의 문인들이 활동무대를 북한의 평양으로 옮기면서 이른바 월북 문인이 되었지만 김기림은 월북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문학가동맹 시대의 활동을 청산하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사상적 전향을 선언한 후 한국문학가협회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정치보위부원에 의해 연행당한 후 9. 28 수복 직전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그의 행적은 그 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1988년 월북문인 해금 조치 이후 문학사에서 그의 문학적 위상이 주목되면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 발굴한 작품들은 모두 해방 공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김기림이 서 있던 문단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울어라 인경아는 해방 직후 창간된 신조선보(新朝鮮報)(1945. 12. 27)발표한 작품이다. 1945해방을 맞은 을유년 제야에 종로 인경을 울릴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들의 청원이 잇달았다. 미 군정청에서는 결국 이 청원을 받아들여 그 해 1231일 밤에 인경을 울리도록 허가하였다. 이 시는 그 소식을 듣고 쓴 작품으로 노래의 가사 형태로 만들어졌다. 해방의 종소리에 대한 뜨거운 감회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한성일보(漢城日報)(1946. 3. 2)에 발표한 것으로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3.1절의 뜨거운 감회를 노래한 작품이다. 팔월(八月) 데모행렬(行列)에 부치는 노래현대일보(現代日報)(1946. 8. 16)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 뒤 제목을 바람에 불리는 수천 기빨은이라고 바꾸고 일부 구절을 고쳐서 시집 [새노래](1948)에 수록했다. 원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여기에 소개한다. 백만(百萬)의 편을 잃고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47. 8. 7)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시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19477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에게 저격을 당해 서거하자 이를 추모하는 뜻으로 지은 작품이다. 여운형 선생은 조선인민당의 당수로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된 민족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통일(統一)에 부침신민일보(新民日報)(1948. 4. 18)에 발표한 작품이다. 남북한이 각각 서로 다른 이념적 지표를 내세우고 독자적인 정부를 만들고자 할 때 민족 통일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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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인경아

1

문 열어주어라

인경이 울겠단다

벙어리사리 마흔 해

인제 사내나 다 목 노아 울라

(후렴)

울어라 인경아

네거리의 황혼을 찌르며

네가 울면 나도 울마

삼천만(三千萬)이 다 울자

2

창살을 뜨더 줘라

인경이 울겠단다

이 땅에 고인 피 상채기

고이 씨스며 쓰다듬으며

3

뭉치어라 엉키라고

인경이 울겠단다

놈들의 칼과 채찍

함께 겪은 마흔 해 잊지 말라고

4

새나라 오신다고

소리쳐 울겠단다

겹겹이 감긴 어둠

떨어버리고 몸부리치며

                             [신조선보(新朝鮮報), 1945. 12. 27]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

해 없는 나라 굿게 닷힌 겨울의 문() 어두운 육지(陸地)에 펴지는 빙하(氷河)에 깔려 다 식어가는 역사(歷史)의 하상(河上)에 그러허나 영광(榮光)스러운 삼월(三月) 구름 사이 새어 흐르는 간열힌 햇볏에도 생명(生命)과 샘과 싹은 화산(火山)처럼 솟아젓다

누가 막으랴 철이 돌아와 가꾸는 이 없어도 산()과 들 욱어저 피어 눈이 모자라는 진달래꼿을-

민족(民族)의 기억(記憶) 속에 높이 세운 기념비(記念碑) 우리들의 삼월(三月)에 해마다 감기우는 젊은이 마음 또한 꼿다발이니 푸른 하늘 우러러 피어오르는 지튼 피빗은 자유(自由)와 아름다움 죽음보다 사랑하야 열열함이라.

늙은이는 이윽고 모든 것 무덤에 파뭇어 잇어도 버리련만 이 땅이 널린 곳 해마다 뒤니어 피어나는 젊은 싹 녹여버리는 식은 하늘과 소낙비. 세계(世界)가 모이는 날 나라 없는 머리 추어들 곳 없어 일허버린 조국(祖國)은 목숨보다 비싸더라. 어버이와 자손(子孫)들 드되어 일어낫으니 조여드는 독사(毒蛇)의 허리 비틀어 뻐기며 라오곤보다 사나웁게 소리첫드라.

조상(祖上)적 남기신 여러 번 빗나는 사연과 용맹한 기록 가지가지 지니지 못하는 못난 자손(子孫)들 미운 굴욕(屈辱)의 역사(歷史) 지워버리려 상처 바든 민족(民族)의 노염 불길처럼 국토(國土)에 덥여

 

우리들의 삼월(三月)

하늘하늘 뻣히는

세기의 봉수불이었다.

창칼에 땅이 찍겨 다시 어두운 강산(江山)이 꼿가튼 피와 눈물에 젓어 감추어진 민족(民族)의 마음 하늘가에 이즈러진 무지개 걸리어 닥처오는 시간의 저편에 새나라 찻어 민족(民族)의 방랑(放浪)은 시작하였었다. 구름과 눈물 아롱져 빗나는 달 삼월(三月)을 안고 .....

젊은 삼월(三月) 아네모네곱게 타는 달은 우리들의 자랑 무지(無知)한 세기(世紀)의 암벽(岩壁)에 피로 쓴 아름다운 항의(抗議).

흐린 하늘과 어즈러운 밤과 사막(砂漠)에 울리던 태양(太陽)의 예언자(豫言者) 일어나라...... 웨치는 목쉰 소리었다.

인제 삼월(三月)은 꺼질 줄 모르는 횃불. 우리들의 압날 곤()하고 괴로운 먼 길 낙심(落心)과 회의(懷疑) 비겁(卑怯)의 그림자 일일이 살워버리는 거룩한 불길이어라.

                                                                                           [한성일보(漢城日報), 1946. 3. 2]

 

팔월(八月) 데모 행렬(行列)에 부치는 노래

 

바람에 떨리는 수천 기빨은

창공()에 쏘는 인민(人民)의 가지가지 호소(呼訴).

 

소리소리 웨치는 노래와 환호(歡呼)

구름에 사모치는 백성들의 횃불

타다타다 빛도 없는 팔월(八月)의 횃불

 

아스팔트 뒤흔들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발자곡의 조수는

어둔 밤 설레는 파도소리냐.

닥아오는 새날의 발울림이냐.

                                                         [현대일보(現代日報), 1946. 8. 16]

 

백만(百萬)의 편을 잃고

 

당신은 자동차(自動車)를 싫여하섯다.

자동차(自動車)보다는 뻐쓰를

뻐쓰보다는 몬지 낀 길바닥을 것기를 좋아하섯다.

거기 띠끌을 쓰고가는 우리들 곁에 늘 오시고 싶은 때문이었다.

 

당신의 곁에는 총()칼 찬 친위대(親衛隊)도 아모것도 없었다.

그런 것은 비겁(卑怯)한 팟쇼의 대장(大將)들의 짓이라 하섯다.

백성에게 자유(自由)가 없고 억울한 죽엄이 그들 앞에 나날이 딩굴 적에

호올로 안전(安全)한 곳에 당신은 도시 앉었을 수가 없었다.

쓸어질지라도 다만 괴로운 인민(人民)의 속에 있기가 소원이섯다.

 

당신은 언제고 젊은이들의 벗

가난한 이웃과 불상한 사람들의 친구

아이들과 공차고 달리기 좋아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이었다.

그러기에 당신과는 참말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얘기할 수 있었고

마음 놓고 정권(政權)도 미끼리라 했다.

 

언제고 군중(群衆)의 환호(歡呼) 속에 나타나던 당신

성낸 사자(獅子)처럼 단상(壇上)에서 노호(怒號)하실 적에도

우리는 서산(西山)을 처다보며 뻑뻑 담배를 빨 수가 있었다.

야단맛고 벌벌 떠는 것은 팟쇼의 대장(大將)들과 인민(人民)의 적()들이고

우리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시달리는 백성을 등에 돌리고 반동(反動) 앞에

당신이 가로막아 섰을 때

우리는 참말이지 신이 났었다.

그러기에 당신의 일홈과 함께 인민(人民)이 부르는 만세(萬歲) 소리는

가슴과 뱃장에서 아니 발톱에서 머리끝까지 울려나왔다.

당신은 벌써 당신 자신(自身)이 아니오

모든 인민(人民)의 당신이었다.

 

뚫어진 차()에 실려 소리없이 종로(鐘路)로 도라오실 적에

골목의 과일장수도 신기우려도 어멈도 여점원(女店員)

기구와 저울과 수판을 내던지고 엉엉 울었다.

기자(記者)는 연필을 팽개첫으며 늙은이와 소년(少年)

벽보(壁報) 앞에 그만 줏앉었다.

그들은 그들의 겻테서 백만(百萬)의 편을 한꺼번에 잃었던 것이다.

 

지금 전에 없이 사나운 반동(反動)의 회오리 속에서

아우성치는 인민(人民)의 곁에 아모리 도라보아야 당신이 안 계시다.

오늘은 웅변(雄辯) 대신에 무거운 침묵(沈默)으로써 가르키시는

승리(勝利)로 가는 싸움의 길이 만() 사람의 눈앞에 눈물에 어려 빛날 뿐

피로써 당신이 헤치신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의 길이

횃불처럼 별처럼 떨리고 있을 뿐.

-몽양(夢陽) 선생(先生)을 일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1947. 8. 7]

 

통일(統一)에 부침

 

우리는 본시 하나이었다.

뼈저린 챗직 아래서도 끌어안고 견디던 하나이었다.

소리소리 지르면 제절로 반항(反抗)의 합창(合唱)이던

눈물어린 망향(望鄕)의 쓴 잔도 함께 난운

! 둘을 모르는 하나이었다.

팃기 없는 하늘 아래

문의 놓은 기와와 그릇과 비단과 종종한 말

모두 아름다운 것

죽어지라 사랑하며 살아온 내력(來歷)도 하나.

 

인제 온 백성을 들어 구임(口臨) 문제(問題)의 막다른 골로 몰아넣어

형제(兄弟) 있는 곳과 소식 또 오래인 꿈

돌볼 새 없이 만드는

이 놀라운 실리주의(實利主義)의 천재(天才)에 우리 모두 항거(抗拒)하리라.

짓밟힌 아름다운 것 함께 뫃여 소곤소곤 살아갈 길 지키기 위하여

 

이방(異邦) 친구들에게 일르노니

한데 뭉친 민중(民衆)의 민주주의(民主主義) 대신에

쪼각난 폭군(暴君)의 민주주의(民主主義)

그대들에게 우리 언제 부탁한 기억(記憶)이 없다.

사월(四月)달 진달레 뿌리 벋어

말래도 굳이 벋어

남북(南北)으로 만발(滿發)한 산맥(山脈)과 핏줄

뚜드러져 굼뚤거리는 것

뉘 감히 끊을 것이냐?

 

흐르는 강물도 철로(鐵路)도 전선(電線)도 변하는 계절(季節)

오로지 한 소리 아래 움지기고 시퍼

모든 시내 강물 바다로 뫃이듯

진달레 개나리 욱어져 피는 한 보금자리로

우리 모두 한데 엉키어 논이지 말자.

 

틀어쥔 손과 손 악수(握手)가 아니라

()과 북()의 자국도 없는 용접(鎔接)

모든 열역학(熱力學)의 법칙(法則)을 기우려

거만한 이방(異邦) 사람들의 눈앞에서

보아지라 우리 모두 감아매리.

                                                     [신민일보(新民日報) 1948. 4. 18]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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